『조선왕조실록』에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태종실록』에는 1406년(태종 6) “창덕궁과 건원릉에 소나무를 심도록 명하다”라는 기록도 있다.
중국 베이징의 쯔진청(자금성)이 나무가 없어 황량한 것과 달리 우리 궁궐에는 창덕궁의 터줏대감인 700년 된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 돈화문 안의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472호) 등 궁궐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나무가 많다.
그러나 궁궐 안의 나무들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궁궐과 함께 파괴되고 뿌리째 뽑혀나갔다. 그 자리에는 벚꽃과 동물원 따위가 들어섰다. 조선의 법궁 경복궁 역시 민족의 수난을 고스란히 겪었다. 1915년 조선이 일본에 강제병탄된 지 5년째 되던 해 일제는 조선 통치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통치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라는 행사를 열기로 결정하고 1913년부터 제국회의에서 예산을 책정했다. 1913년 8월 6일 장소를 경복궁으로 정하는 조선총독부 고시령을 공포했다.
조선물산공진회란 한마디로 박람회를 뜻하는 것으로, 조선의 대표 궁궐 경복궁을 박람회장으로 꾸미기 위해 파괴했다. 조선총독부는 예산이 확보되자 멋대로 전각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등 궁궐 파괴에 착수했다.
500년 사직의 상징이던 궁궐은 원형이 상당히 파괴되었다. 일제는 지금의 광화문 바로 안쪽에 분수대를 만들고 왼쪽에는 양어장을 만들었다. 그뿐만아니라 경복궁 안에 전시관, 미술관, 음악당, 철도국특설관, 동양척식특설관, 기계관 등을 빼곡하게 짓고 야외 전시장이라는 명목으로 지광국사현묘탑 등 전국 사찰에 있던 석탑, 석등, 석불, 석비를 무단으로 가져와 전시했다.
조선물산공진회는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렸는데, 이 박람회의 홍보를 위해 기생을 앞세운 포스터를 만들어 온 나라에 뿌렸다.
조선총독부는 심지어 궁궐의 주인인 순종을 박람회장에 나오게 해 궁궐을 파괴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도록 했다. 『순종실록부록』을 보면 1915년 10월 17일 “임금께서 가마로 경복궁 내의 공진회장에 임어하여 포상수여식을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국권을 빼앗기고 자신이 살던 궁궐을 뜯어내어 박람회장으로 개조한 것만도 통탄할 일인데 이들에게 잘했노라고 상까지 주게 만든 것은 조선 능멸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이어 왕비도 나흘째 되는 날 가마를 타고 조선물산공진회에 갔다는 기록이 있다.
가끔 경복궁에 가보면 100년 전 경복궁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궁궐이 파괴되면서 뜰에 심어졌던 숱한 나무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 쓰라린 현장에 일본이 원산지인 노무라단풍을 심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한 처사가 아니다. 노무라단풍은 충남 아산 현충사에도 심어져 있다.
보통 단풍나무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이파리가 녹색을 띠다가 가을이 되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하지만 노무라단풍은 봄에도 잎 색이 붉다. 혼자 붉은 노무라단풍이 어째서 경복궁 뜰에 심어지고 현충사에 심어져 있는 것일까? 국가의 자존심을 세워야 할 곳만이라도 노무라단풍을 다른 나무로 바꾸었으면 한다.
-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지음, 155~15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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