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양심을 지킨 사람들 - 김형민

튼씩이 2022. 2. 14. 12:53

 

 

부제(교과서가 들려주지 않는)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지금까지 나와 있는 역사 교과서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짧게 언급만 하고 지나친 숨은 양심들을 소개한다. 모난 돌이 정 맞고, 나서지 말고 중간만 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온 사회환경 속에서 부당한 권력에 맞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린이들을 위해 나온 책이었지만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살 만한 세상이 된 것은 나름의 양심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목 차

01 목숨을 버리고 정의를 지킨 궁정 관리, 검군

02 연산군을 꾸짖은 환관, 김처선

03 백성을 위해 싸운 장군과 의병장, 황진?곽재우

04 권력에 맞선 조선의 예술가, 김성기

05 검사를 고발한 검사, 이준

06 백정해방운동을 이끈 양반, 강상호

07 만주를 누빈 조선의 여전사, 남자현

08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언론인, 장준하

09 민중 학살 명령을 거부한 경찰, 이섭진

10 작은 목소리를 대변한 변호사, 조영래

11 혁명의 불을 지핀 사람들, 박종철 외

12 세상을 바꾼 양심선언자들, 이문옥, 이지문, 한준수

 

한때 평리원에 의해 기소돼 매질을 당하기도 한 전과자이준 검사는 짧은 검사 생활 동안 검사가 지녀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 준다. 한 예로 이준이 맡았던 이재규 토지 강탈 사건을 들 수 있다. 황족인 이재규가 일본인 등과 부화뇌동하여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논밭의 문권과 증권을 위조해 자기 소유로 만들고 황족의 지위를 이용하여 토지를 빼앗은 사건인데, 이준은 이재규에게 자그마치 징역 10년을 구형하여 거만하게 앉아 있던 황족을 기겁하게 만든다.

이준 검사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06년 황태자인 순종의 재혼 가례를 맞이하여 고종 황제가 특사령을 내리는데, 이때 이준 검사는 을사늑약 반대 운동을 했거나 매국노 처단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이들을 특별 사면 명단에 끼워 넣는다. 외교권을 빼앗긴 식민지의 검사가 독립운동가 사면을 요청한 것이다.”    - 79- 검사를 고발한 검사, 이준중에서

 

 

오직 선생님만은 그 시대의 속칭 양반 계급임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명예를 포기하고 전 재산을 내놓으면서 우리의 고독한 사회적 지위의 인권 해방, 계급 타파를 위하여 선봉에 나서서 오직 자유, 인권, 평등을 부르짖으시며, 우리의 치학의 개방을 부르짖으시며 우리만이 당해 오던 50만 동포를 위해 주야고심 투쟁하지 않으셨습니까. 위대하십니다! 장하십니다.”  - 99- 백정해방운동을 이끈 양반, 강상호중에서

 

 

이름이 무명지(無名指, 약지)라 한들 어찌 쓸모없는 손가락이겠느냐. 제 나라를 잃고 무명민(無名民)이 되어 떠도는 내 넋보다는 실한 것이었느니, 어쩌면 평생을 가만히 붙어 내 손을 채웠던 이 작은 것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도 있겠다 싶구나. 중지와 약지 사이에 어중간하게 여기도 붙었다 저기도 붙었다 하며 살아 온 줏대 없음을 논죄하는 준엄한 심판이 아니겠느냐.” (중략) 어린아이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한다지만 머리 굵은 성인이 변신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10대도, 20대도 아닌 나이 마흔일곱의 중년 여성이, 양반집 딸로 태어나 선비 가문에 시집가서 삯바느질로 집안을 이끌던 조선의 여인이 민족 해방 전선의 여전사를 탈바꿈한 예는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드물 것이다.  - 112113- 만주를 누빈 조선의 여전사, 남자현중에서

 

 

사상계

전쟁 통에 탄생한 사상계는 민족 통일 문제, 민주주의 사상의 함양, 경제 발전, 새로운 문화 창조, 민족 자존심의 양성을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자칫하면 공산주의자로 오해받기 좋을 글부터 당대 지식인들의 논쟁까지, 폭넓은 기획과 내용으로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인문 교양지라 할 사상계1960년대 그 어려운 시기에 58만 부나 팔려 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상계의 가치와 의미는 충분히 증명된다.

지식인의 필독서는 대개 권력자들에게 혐오의 대상이기 쉽다. 장준하의 사상계역시 그랬다. 사상계의 내용을 마땅치 않아 하던 정부는 1970년 폐간 조치를 내린다.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차관 등 특수 계층을 도둑 적() 자로 표현하면서 부정부패를 날카롭게 풍자, 비판한 김지하의 시 <오적>을 실은 것이 발단이었다. <오적>이 실린 것은 19705월호, 지령 제205호였다. 20여 년 동안 한국 지성계를 호령하던 잡지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 125-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언론인, 장준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