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서민(단국대 의대교수)이야기

측근 비리 품어주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

튼씩이 2016. 9. 17. 12:48

우병우 민정수석은 결국 추석 때까지 자리를 지키게 됐다. 민정수석이 검찰 조사를 받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는데, 여기엔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겨운 리더십이 있었다. 안타까운 일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모두가 손가락만 볼 때 달을 보라고 권하는 게 칼럼의 존재이유라면 보수 쪽 칼럼니스트들이라도 여기에 대해 언급해 줘야 할 테지만, 레임덕 때문인지 그들은 이 문제를 모른 체하고 있다. 경향신문에 박근혜 찬양가가 실리는 게 좀 어색할 테지만, 대통령에게 드리는 추석선물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우병우 수석의 비리는 박 대통령과 별 상관이 없다. 설령 우 수석이 처가의 땅을 기업에 비싸게 강매하고, 공직자 재산공개 때 주식 81억원을 5000만원으로 줄여 신고했고,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하면서 각종 이득을 취한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사람을 왜 민정수석으로 뽑았느냐고 따질 수는 있지만, 이게 다 박 대통령의 책임이라 할 수는 없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사람이 민정수석 자리에 앉아 공직자를 검증하는 게 말이 안되니, 우 수석을 해임하라”다.

 

민정수석의 해임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된다. 이 간단한 일을 대통령은 하지 않고 있으니, 국민들의 비판이 우 수석에서 대통령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즉 대통령은 우 수석이 받아야 할 비판을 대신 받아주고 있다. 진정한 리더가 아랫사람의 잘못도 감싸 안는 존재라면, 박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서 보기 힘든 책임 있는 리더인 셈이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우병우에게만 미친 게 아니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임명된 김재수는 모 기업으로부터 부동산 특혜를 받고, 그 기업과 특수 관계인 해운회사에 부실대출을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같은 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된 조윤선은 생활비가 5억원에 달할 만큼 과소비를 일삼은 게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이 둘은 별다른 걸림돌 없이 장관이 됐다.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내겠다고 했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심드렁하다. 비리 백화점이라 할 만한 우병우가 민정수석으로 있으니 이 둘의 흠결은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일어나 버린 것. 이쯤 되면 ‘리더십의 승리’라 할 만하지 않은가?

 

대통령의 리더십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니다. 2012년 대선 때 국정원은 직원들을 시켜 여당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을 달게 했다. 다들 알다시피 국정원을 좌지우지하던 이는 당시 대통령인 이명박이었으니, 설령 댓글 덕분에 박 대통령이 당선됐다 하더라도 그 사건의 책임은 엄연히 이 전 대통령에게 묻는 게 맞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 국정원에 셀프개혁, 즉 ‘니들이 알아서 잘 처신하라’고 한 데 이어 이 사건을 열심히 수사하던 검찰총장을 낙마시킴으로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무산시켰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세간의 여론은 박 대통령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이까지 나왔다. 이 모든 비판을 박 대통령은 스스로 떠안았다. “네가 방귀 뀌었냐?”는 질문에도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치는 우리 같은 민초들은 상상도 못할 경지의 포용력이었다. 이 리더십은 국정원을 감화시켰다. 그 결과 국정원은 정권 보위라는 본연의 임무를 더 충실히 수행하고 있고, 서울시에서 공무원으로 있던 유우성씨에게 간첩혐의를 뒤집어씌워 가두는 등 본업과 무관한 대공업무도 이따금씩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 역시 리더십의 승리라 할 만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발휘한 리더십의 백미는 역시 세월호 사건이었다. 배가 침몰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그게 대통령 탓은 아니다. 문제는 해경이 왜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였다. 세월호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인데, 해경을 박 대통령이 만든 게 아닌 이상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졌다면 이걸 가지고 대통령을 욕할 사람은 많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대통령은 별다른 조사도 하지 않은 채 해경을 해체해 버렸다. 졸지에 비판의 대상이 사라져 버린 셈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세월호 유족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만나 달라는 요구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방해를 받아 제대로 된 활동을 못하는 것도 수수방관했다. 세월호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아꼈고, 1주년 때는 갑자기 중남미 순방을 떠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해경 대신 박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심지어 세월호가 국정원의 음모라고 하거나, 대통령이 침몰 당일 7시간 동안 자리를 비운 것도 뭔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생겼다. 이 모든 비판을 대통령은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 이 리더십은 필경 전직 해경들을 감동시켰을 터, 혹시 대통령이 바다에 빠진다면 수백 명의 전직 해경들이 목숨을 걸고 구해내지 않을까


 

아랫사람을 욕하지 말고 대신 나를 욕하라. 우리나라, 아니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그분의 바람대로 이번 추석 연휴 내내 대통령을 욕해 드리자. 그분의 한가위가 훨씬 더 풍성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