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4일, 국회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170명의 의원이 참석해 16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 결정이 난 못내 아쉽다. 이로 인해 이득을 본 곳이 없기 때문이다.
먼저 대통령을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극히 당연한 조치였다. 대통령은 평소 국회의 견제를 국가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로 간주하고, 지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하시는 분이니, 야당한테 끌려다녀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렇긴 해도 대통령은 패자다. 대통령의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불통 대통령’의 이미지가 재확인된 셈이니 말이다. 만일 국회의 결정대로 김 장관을 해임했다면 당장은 체면을 구기겠지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대통령은 “비상시국에 해임건의안이 통과돼 유감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박 대통령이 대통령을 하는 것보다 더 큰 비상시국은 없는 듯하다.
새누리당 역시 패자다. 국회 안에서 싸우는 대신 퇴장해 버림으로써 해임안이 통과되는 걸 방치했으니 말이다. 그 이후 국회의장을 물고 늘어지고, 국정감사도 전면거부한다고 하는데, 이건 국정에 책임을 져야 할 집권여당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이정현 대표의 단식은 번지수가 틀렸다. 단식이라는 건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하는, 즉 약자가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방법일진대, 집권당 대표가 단식을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정현 대표는 체형상 한 끼라도 굶는 것이 매우 치명적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큰 패자는 이번 결정의 주체인 더불어민주당이다. 더민주는 2016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더민주가 잘해서였을까? 그렇지 않다. 총선 전까지 더민주는 ‘지리멸렬’이란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제대로 된 제1야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과 분열되기까지 해, 총선에서 참패할 거라는 여론이 대세였다. 이랬던 더민주가 원내 제1당이 됐다면, 승리감에 도취되기보다는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가온 대선에 대비하는 게 맞다.
그런데 더민주가 택한 것은 대통령이 추천한 장관의 해임이었다. 이게 산적한 다른 사안을 제쳐놓고 처리해야 할 만큼 시급한 일이었을까?
물론 김재수 장관은 도덕성 면에서 흠결이 있다. 하지만 초저금리로 대출을 받고, 1억9000만 원의 전세금으로 7년간 거주한 것이 다른 장관들에 비해 특별히 더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이전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했던 이동필씨는 17개에 달하는 사외이사, 비상임이사를 겸직했고, 병역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전 장관인 서용규씨 쌀 직불금을 수령해 사과한 바 있다. 되도록 깨끗한 사람이 장관이 된다면 좋겠지만, 비리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비슷한 분들끼리 어울리는 법, 능력도 있는 데다 청렴하기까지 한 사람이 왜 대통령 곁에 있겠는가? 매사 이런 식이면 마땅한 후임이 없어서, 경질해야 마땅한 공직자가 계속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점들을 감안해보면 더민주의 이번 해임안 통과는 자신들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여당을 압박하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의도가 들어맞으려면 앞으로 새누리당이 ‘야당이 정말 세구나! 이제 말 잘 들을게’라고 해야 하지만, 그간의 행태로 보아 새누리당이 그럴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이니, 남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정국경색뿐이고, 국민들은 더민주에도 이 책임을 물을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대사다. 아무리 잘 드는 칼이 있다고 해도 닥치는 대로 베고 다니기보단, 꼭 필요할 때 한번 칼질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아무리 봐도 더민주의 이번 칼질이 ‘꼭 필요할 때’는 아닌 것 같다. 12년 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발언한 것이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이게 대통령이 탄핵될 만한 사안인지 납득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탄핵안을 발의한 이유는 한나라당과 노 대통령의 적으로 돌변한 민주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탄핵안 통과의 기준인 재적의원의 3분의 2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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