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나름대로 소신의 길을 걸어온 정치인이다. 민정당 시절 정치에 입문해 줄곧 보수정당에 몸담은 것도 그렇지만, 호남에 대한 그의 일편단심은 일견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전남 곡성 출신인 그는 1995년 광주 시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낙선한 것을 시작으로 낙선 일변도의 길을 걷는다. 일단 2004년 17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낙선한다. 18대 국회에서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지만, 19대 총선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신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남다른 야망이 있는 것 아닌가 의심을 품었다. 민주당으로 부산에서 번번이 낙선하다 결국 뜻을 이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역감정 해소라는 명분을 가지고 계속 도전하는 그에게 유권자들은 마음을 열었고, 결국 그는 2014년 7월30일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의 기쁨을 안는다. 새누리당 최초의 호남 당선자가 된 그는 올해 20대 총선에서도 순천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를 여유 있게 누르고 당선된다. 3선에 불과한 그가 새누리당 대표가 된 것도 호남 출신 당선자라는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이 정도 경력을 가졌다면 그가 대권에 걸맞은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리라 예상하는 게 과한 기대는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꼬리표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추종하는 소위 친박이며, 그것도 강성이라는 점이었다. 현 대통령이 성군이라면 그가 친박이란 사실이 그다지 문제될 게 없지만,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은 국민을 등지기로 작정한 분처럼 행동하고 계시다. 이럴 때 집권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은 대통령에게 이제 그만 정신 차리라고 충고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그 말로 인해 이 대표가 대표직에서 쫓겨난다고 해도, 이 대표는 그 이상의 과실을 얻을 수 있으리라.
이게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이는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그는 국회를 무시하는 게 습관이 된 박 대통령에게 맞서 국회의 권위를 지키려다 결국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난다. 그 후에도 박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배신자를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의 지역구인 대구에 미치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새누리당에서는 그에게 공천조차 주지 않아, 그는 결국 탈당 후 무소속으로 20대 총선에 나서야 했다. 결과는 압도적인 당선이었다. 원내대표 찍어내기 파동이 있기 전까지 유승민은 냉정히 말해 대권후보로 분류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박 대통령 버프를 받은 뒤 유승민은 대권주자 지지도에서 2016년 4월 기준 17.6%로 여권 내 1위에 오른다. 그 뒤 반기문 돌풍에 휘말려 7월에는 6.7%로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최근 강연에서 5·16을 쿠데타로 못 박는 팩트폭력을 자행하면서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엊그제 나를 태운 택시기사 아저씨는 “여권에서 유승민이 나오면 야당이 어렵다”며 그의 폭발력을 두려워했다.
박 대통령 버프를 받은 분은 유승민만은 아니다. 성남시장 이재명은 애를 낳으면 1인당 25만원씩 상품권을 지급하고, 학생들에게 공짜로 밥을 먹였으며, 심지어 취업이 안된 청년들에게 청년배당이란 명목으로 돈을 지급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복지정책을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특허만 가지고 있던 박 대통령은 이 시장에게 불같이 화를 냈고, 그가 더 이상 시민들에게 복지를 베풀지 못하도록 그의 돈줄을 묶는다.
참다못한 이 시장은 광화문에서 단식을 하는 등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결국 그는 11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지만, 그 과실은 적지 않았다. 그 이전까지 그의 명성이 성남시 인근에만 국한된 반면, 박 대통령 버프를 받은 지금은 전국적 지명도를 갖게 됐으니 말이다. 2015년 1% 남짓에 불과했던 그의 지지율은 계속 올라가 2016년 10월 기준 5.2%가 됐다. 게다가 그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어, 선거전이 시작되면 지지율이 더 오를 것 같다.
이왕 정치를 시작했으니 이정현 대표도 대권의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반대편에 서 계신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그분의 버프를 받아야 하건만, 그가 대표가 된 뒤 한 일은 자신이 박 대통령의 충실한 심복임을 재확인시키는 것들이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에 대한 의견을 묻자 “박근혜 대통령을 고꾸라지게 하려는 것이라면 사람 잘못 봤다. 대통령은 그럴 사람 아니다”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한 바 있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 통과에 대해 대통령이 화를 내자 기껏 선택한 것은 밥을 굶는 일이었다. 일주일 뒤 단식을 중단한 것 역시 박 대통령의 지시였다니 마리오네트 인형이 따로 없다. 이쯤 되면 호남지역에서 낙선을 거듭했던 지난 세월이 아까워지는데, 이왕 글을 쓴 김에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이 난리를 피워가며 집권당 대표가 된 목적이 겨우 박 대통령 졸개 노릇하려고 그런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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