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 2096

안갚음하러 귀향합니다

“안갚음하러 귀향합니다.” 언뜻 들어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빚을 갚지 않기 위해 귀향한다는 걸까? (그렇다면 문장이 잘못 되었다.) 고향의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귀향한다는 걸까? (이때에는 낱말의 철자가 틀렸다.) ‘앙갚음’이란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남이 자기에게 끼친 만큼 자기도 그에게 해를 입힌다.”는 뜻의 말이다. 한자말로 하면 ‘복수’이다. 가령 “그가 나를 불행에 빠뜨렸으니, 나도 앙갚음을 할 거야.”처럼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말에 앙갚음과 발음이 무척 비슷한 ‘안갚음’이라는 낱말이 있다. 빚을 갚지 않는다는 ‘안 갚음’이 아니라,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다는 참한 뜻을 가진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곧 “안갚음하러 귀향합니다.”는 부모님을 봉양하겠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귀향한다는..

비설거지와 표심설거지

6월 4일은 지방선거를 치르는 날이다. 6월 들어 전국 곳곳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가 이 날에도 드문드문 투표소로 가는 길을 적실 듯하다.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도려냈던 진도 앞바다의 참담한 사고가 아직 수습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권력자들을 뽑아 주어야 하는 발걸음이다. 가느다란 빗줄기에도 자꾸 걸려서 발을 내딛기가 힘겹다. 비와 관련된 우리말 가운데 ‘비설거지’가 있다. 이 말은 “비가 오려고 할 때, 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을 뜻한다. “비 올 것 같다. 빨래 걷어라.” 하는 것보다 “비 올 것 같다. 비설거지해라.”고 하면, 빨래뿐 아니라 비 맞으면 안 되는 다른 물건들도 치우라는 말이 된다. 지방선거를 통해 권력을 꿈꾸는 이들이 혹시 ‘표심설거지’를 할까 염려스럽다. ..

하룻강아지

흔히 사회적 경험이 적고 자신의 얕은 지식만을 가지고 덤벼드는 사람을 가리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한다. 이 속담에는 ‘하룻강아지’가 등장하는데, 언뜻 보면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속담이라도 그렇지, 갓 태어나서 눈도 못 뜨고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강아지가 범에게 덤빌 리는 만무하다. 이 ‘하룻강아지’의 ‘하룻’은 날짜를 헤아리는 그 ‘하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소나 말, 개 등과 같은 가축의 나이를 ‘하릅, 이듭, 사릅, 나릅, 다습, 여습’ 들처럼 세었다. 이때의 ‘하릅’은 한 살을 뜻하므로, 한 살 먹은 개를 ‘하릅강아지’라 하였고, 이 말이 오늘날 ‘하룻강아지’로 변하여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룻강아지'는 ..

노랫말의 반칙

가수 전영록 님이 부른 란 노래는, “꿈으로 가득 찬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고 시작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설레이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설레다’가 표준말이다. 이 노랫말의 ‘설레이는’은 ‘설레는’으로 고쳐야 하고, ‘쓸려거든’은 ‘쓰려거든’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아이들이 즐겨 먹는 ‘설레임’이란 얼음과자가 있는데, 이 제품 이름도 ‘설렘’으로 고쳐야 맞는 표현이 된다. 설운도 님의 에 들어있는 “목메이게 불러봅니다”라는 노랫말도 ‘설레는’을 ‘설레이는’으로 잘못 쓴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이때에도 ‘목메이게’가 아니라 ‘목메게’로 바로잡아 써야 한다. 서정주 시인의 작품 도 가수 송창식 님이 대중가요로 만들어 널리 불리고 있는데,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

땅을 쳐다보며 걸을 수 있을까?

허술한 재난 관리 체계로 수백의 꽃다운 생명이 눈앞에서 허무하게 스러져 가고, 동부전선에선 아군의 총부리가 동료들을 향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총리 후보 지명자가 또 한번 여론의 몰매를 맞고 물러나, 새 대통령 취임 이후 아직까지도 총리를 못 구하는 기막힌 일을 당하고 있다. 이 모든 시름을 잠깐 잊게 해주리라 기대했던 태극 전사들도 국민을 위로하지 못하였다. 길고 깊은 불황의 그늘에서 희망을 보기 힘들었던 서민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친구가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면서 한숨을 푹푹 쉬는 것을 보고, “무슨 고민이 있기에 땅만 쳐다보며 걷니?” 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얼른 들어서는 자연스러운 말이지만, 이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쳐다보다’ 하는 말은 “얼굴을 들고 올려다보다.”는 ..

모밀국수 사리 주세요!

더운 날씨에 많이 찾게 되는 음식 가운데, ‘모밀국수’라 불리는 국수가 있다. 대나무 발에 받친 면을 살얼음 동동 띄운 육수에 담갔다 먹는 그 시원한 맛! 그러나 ‘모밀국수’는 ‘메밀국수’라고 해야 맞다. ‘모밀’과 ‘메밀’은 모두 우리말로서, 이 가운데 ‘메밀’이 오늘날 표준말로 정착하였고, 주로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쓰이던 ‘모밀’은 방언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모밀묵이나 모밀떡 들과 같은 말들도 모두 메밀묵, 메밀떡으로 써야 한다. 면을 더 주문할 때, “사리 좀 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말이 아니다. ‘사리’는 국수를 동그랗게 감아놓은 뭉치를 세는 단위이지, 국수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밥 한 그릇, 두 그릇 하고 세듯이, 국수 한 사리, 두 사리 하고 세는 ..

뒷산 자드락에 밭을 일구며

우리 민족은 산을 무척 사랑한다. 그래서 산과 관련된 우리말 또한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산에 관하여 흔히 알고 있는 낱말들이, ‘산기슭, 산마루, 산비탈, 산모퉁이, 산모롱이, 산등성이, 산자락’ 같은 말들이다. 이 가운데 ‘산기슭’이나 ‘산비탈’, ‘산등성이’는 대부분 어느 부분인지 잘 알고 있지만, ‘산모퉁이’와 ‘산모롱이’, ‘산마루’, ‘산자락’들은 정확하게 어느 곳을 말하는지 헷갈려 하는 이들이 많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산의 아랫부분을 ‘산기슭’이라 하는데, 이 산기슭의 쑥 내민 귀퉁이를 두고 바로 ‘산모퉁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산모퉁이를 휘어져 돌아가는 부분은 ‘산모롱이’로 부른다. 보통 산기슭은 나지막하게 펼쳐져 있는데, 이 산기슭의 비스듬히 기울어진 땅을 ‘자드락’이라고 한다...

‘펫코노미’는 ‘반려동물 산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장소원, 이하 국어원)은 ‘펫코노미’를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반려동물 산업’을 선정했다. ‘펫코노미’는 반려동물과 관련된 산업을 이르는 말이다. 문체부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하나로 국어원과 함께 외국어 새말 대체어 제공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문체부와 국어원은 지난 11월 3일(수)에 열린 새말모임*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미의 적절성과 활용성 등을 다각으로 검토해 ‘펫코노미’의 대체어로 ‘반려동물 산업’을 선정했다. * 새말모임: 어려운 외래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다듬은 말을 제공하기 위해 국어 유관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 이에 대해 문체부는 11월 5일(금)부터 11월 10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