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 2096

설 잘 쇠세요!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설 잘 보내세요!” 풍성한 명절을 앞두고 저마다 정겨운 인사말들을 나눈다. 그러나 설을 잘 보내라는 이 인사말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명절에는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기도 하고 헤어져 살던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모처럼 정을 나누기도 한다. 만약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명절을 지냈다면 ‘명절을 보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차례도 지내고 친척들과 만나 음식도 함께 먹고 했다면 명절을 그냥 보내버린 것이 아니라, ‘쇤’ 것이 된다. 그래서 ‘명절을 쇠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설 잘 보내세요!”보다는 “설 잘 쇠세요!”가 바람직한 인사말이다.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만났을 때 “설 잘 쇠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은 괜찮지만, “설 잘 보내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은 알맞지 않다. ‘쇠다..

무심코 사용하는 장애 차별 표현, ‘꿀 먹은 벙어리’, ‘선택 장애’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32조는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 역시 2014년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 등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게 하는 표현을 공적 영역에서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과거부터 쓰던 말이라도 그 말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바뀌면 더는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 된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고정관념을 심화시키고 재생산하는 표현이 그렇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권과 언론, 일상에는 버젓이 장애 차별 표현을 쓰고 있다.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장애 차별 표현 선거철만 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장애 차별 표현이 이어진다. 주로 ..

100년 전 우리말 풍경 - 100년 전 해외에서 발행된 한글 신문

‘디아스포라(Diaspora)’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본래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고유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을 이르는 말이다. 디아스포라가 일반적인 이주 공동체와 구별되는 점은 이들이 현지 사회 집단과 분리되어 고립된 생활 공간을 이루고 있으며, 떠나온 땅을 찾아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갖고 강하게 단결하는 민족 공동체라는 점이다. 한국인들의 집단적 해외 이주가 시작된 20세기 초부터 세계 곳곳에 한국어 디아스포라가 생겨났다. 그 전에도 한반도를 떠나 해외에 정착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국가가 인정하는 정식 이민은 1903년 하와이 노동 이민에서 시작되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인부로 일하기 위해 이민선에 오른 이들은 모두 대한제국 수민원*에서 발급한 여권을 소..

그린비와 단미

아내가 남편을 부르거나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 가장 보편적인 부름말은 ‘여보’이다. 본디는 ‘여봐요’라고 불렀었는데, 한 5, 60년 전부터 이 말이 줄어든 형태인 ‘여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표준어가 되었다. 흔히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자기’, ‘오빠’, 심지어는 ‘아빠’라는 부름말을 쓰는 철없는 아내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부름말로든 가리킴말로든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오빠’나 ‘아빠’는 자기의 친정 오라버니나 친정아버지를 부르는 것인지 남편을 부르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에도 부름말을 잘 가려 써야 한다. ‘여보’, ‘여보게’, ‘임자’라는 말들이 전통적인 부름말이다. 아직도 아내를 ‘이봐’라고 부르거나, ‘야!’ 또는 ‘어이!’로 부르는 남..

봄새 별고 없으신지요?

사자성어 가운데 ‘삼춘가절’이라는 말이 있다. 봄철 석 달의 좋은 시절을 뜻하는 말로서 3, 4, 5월을 삼춘가절이라고 한다. 3월 하고도 중순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찬 기운이 남아 있어서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길나무 가지마다에 푸릇푸릇 돋은 싹들을 보니, 곧 봄을 만끽할 수 있는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리라 생각된다. 봄이 되면서 직장인들은 몸이 자주 나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봄철에 느끼는 나른한 기운을 ‘봄고단’이라고 한다. 흔히 한자말로 ‘춘곤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예부터 우리 한아비들은 “요즘 봄고단을 느끼는지 낮에도 자꾸 졸음이 옵니다.”처럼 말하고 썼다. 봄고단을 이겨내려면 일을 할 때 몸을 되도록 많이 움직이고 자리에 앉아 있을 때도 가끔 가벼운 몸펴기 운..

고달픈 삶

우리말에서 은 대개 ‘-프다’가 붙어서 쓰이고 있다. ‘아프다’가 그렇고, ‘배고프다, 슬프다, 구슬프다, 서글프다’ 들이 모두 그렇다. 예를 들어, 움푹 팬 곳이나 깊은 구멍을 우리말로 ‘골’이라고 하는데, 이 ‘골’에 ‘-프다’가 붙어 만들어진 ‘골프다’가 오늘날 ‘고프다’로 되었고, 이 ‘고프다’는 배가 비어 있는 것을 느낀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또, ‘가늘다’라고 하면 물체의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가냘프다’고 하면 “가늘고 얇게 느껴진다.”는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된다. 그래서 ‘가냘픈 여인의 몸매’라고 하면 객관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측면이 강한 말이 되는 것이다. ‘고단하다’와 ‘고달프다’ 또한 같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낱말들이다. 흔히 몸이 지치고 힘..

영 케어러 -> 가족돌봄청소년

'영 케어러(young carer)'라는 외국어를 대신할 우리말로 '가족돌봄청소년'이 뽑혔다. 공공기관이나 언론이 사용하는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다듬기 위해 꾸려진 한글문화연대 말모이 모임이 11월 19일부터 12월 2일까지 '영 케어러(young carer)'의 쉬운 우리말을 논의한 결과였다. '영 케어러(young carer)'는 가족 돌봄을 홀로 부담해야 하는 청년, 병에 걸린 부모나 가족을 간병하는 청년들은 일컫는 말을 뜻하며 사전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김형주 님은 "이 낱말이 언론 보도에 등장한 것은 2018년 2월경으로 여겨집니다. 지난 10월 김성주 국회의원이 청소년 복지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하면서 ‘가족돌봄청소년’으로 명명했는데 언론에서 ‘영 케어러’를 무분별하게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

뜨게부부와 새들꾼

봄이 되니 혼인을 알리는 청첩장이 부쩍 늘었다. 일가친지와 벗들 앞에서 가장 아름답게 혼인 예식을 치르고 싶은 마음이 청첩장마다 들어 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혼례를 치르지 않고 그대로 동거해 버리는 남녀도 있다. 요즘에는 ‘혼전동거’라 하고 ‘동거남’이니 ‘동거녀’니 말하지만, 예전에는 이러한 남녀를 ‘뜨게부부’라 하였다. ‘뜨게’는 ‘본을 뜨다’와 마찬가지로 흉내 낸다는 뜻이므로, ‘뜨게부부’는 정식 부부가 아니라 남녀가 부부 행세를 할 때에 부르던 말이었다. 따라서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도 ‘뜨게부부’라 부를 수 있다. 남녀를 서로 맺어주는 일을 ‘중신하다’, ‘중매하다’고 말하는데, 이때에 쓰는 토박이말이 ‘새들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중매하는 사람 곧 ‘중매쟁이’를 ‘..

구름다리와 섬다리

우리말 ‘산봉우리, 산마루, 산줄기, 산비탈, 산자락, 산기슭’ 가운데 ‘산줄기’가 일본식 한자말 ‘산맥’으로 바뀌어 버렸다. 북한에서는 아직 ‘산줄기’라 한다. ‘백두대간’이라 할 때의 ‘대간’이나 ‘정맥, 지맥’ 들의 ‘간, 맥’이 다 ‘줄기’라는 말이다. ‘산맥’을 ‘산줄기’라고 살려 쓰면 남북한 언어의 차이도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육교’라고 부르는 것도 일본말이다. 이러한 형태의 다리를 중국에서는 ‘하늘다리’라 하고, 우리는 ‘구름다리’라고 한다. 일본말 ‘육교’는 ‘뭍에 있는 다리’이니 가장 좀스럽고, ‘하늘다리’는 지나친 과장이고, 우리말 ‘구름다리’가 알맞고 정겹다. 이름 짓는 방식에서도 민족성이 엿보인다. 이 말과 비슷한 경우로, 요즘 들어 ‘연륙교’라 부르는 다리가 있는데, 섬과 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