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 2096

사전 두 배로 즐기기 - ‘한국수어사전’, 수어로 연결하기

지방에 가려고 기차역에 갔을 때였다. 대합실에 있는 대형 텔레비전에서 정부 정책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수어통역사가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통역하고 있었다. 어느새 수어가 우리 사회에 낯설지만은 않은 언어가 되어 있었다. 정부 정책 발표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송 화면 우측 하단에서도 수어 통역을 볼 수 있고, 각종 행사, 토론회 등에도 수어통역사가 배치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가끔 지하철에서 수어로 대화하는 농인들을 보기도 한다. 수어가 대중 매체에 많이 노출되면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 일이 늘어났다. 그중에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수어는 만국공통어인가요?”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스처와 비슷하게 손, 머리 그리고 몸을 이용해 말을 하는 언어이다 보니 모든 나라의 수어가 같을 것이라고 생각..

거스러미와 구레나룻

살결이 매끄럽지 않고 거칠어지면 ‘거슬거슬하다’고 말한다. 좀 더 심해져서 까칠해지면 ‘까슬까슬하다’, ‘꺼슬꺼슬하다’ 따위 센말로 표현할 수 있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손끝 부분이 잘 트기도 하고 살갗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은데, 까슬까슬해진 손끝은 명주실로 짠 이불에만 스쳐도 따갑다. 그러나 손톱이 박힌 자리 주변에 살짝 일어난 살갗은 이보다 훨씬 따갑고 신경 쓰인다. 이렇게 일어난 살갗을 ‘거스러미’라고 한다. 그런데 나무의 결이 가시처럼 얇게 터져 일어나는 부분도 거스러미라고 하기 때문에, 손톱 주변의 살 껍질이 일어나는 것은 따로 ‘손거스러미’라 하기도 한다. 거스러미를 흔히 ‘꺼스러기’, ‘꺼스렁이’ 들로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가리켜서 ‘구렛나루’라고 알고..

575돌 한글날 기념, 2021년 우리말 사랑꾼에 한국도로공사와 김정섭 공주시장

한글문화연대(대표 이건범)는 575돌 한글날을 맞아 올바른 우리말 사용과 공공언어 쉽게 쓰기에 앞장선 2021년 ‘우리말 사랑꾼’으로 한국도로공사와 공주시장 김정섭을 뽑았다. 우리말 환경을 어지럽힌 ‘우리말 해침꾼’으로는 쓸데없이 외국어를 남용한 문화방송 출연진과 제작진을 뽑았다. 한국도로공사(사장 김진숙)는 2020년 5월부터 고속도로 전문용어 표준화 사업을 추진하여 고속도로 건설 현장과 도로 운영 관리에서 사용하던 ‘데나우시, 단도리’ 등의 일본어 잔재, ‘블랙 아이스, 아이시(IC)’ 등의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고, 2021년에는 국토교통부를 통해 전문용어 표준화를 추진하였다. 한국도로공사에서는 위 용어를 포함하여 모두 243개의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2020년 한글날에 ‘우리 길 우리..

새털과 쇠털

우리는 흔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날을 비유해서 ‘새털같이 많은 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새털’은 ‘쇠털’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이다. 소의 뿔을 ‘쇠뿔’이라 하듯이 소의 털을 ‘쇠털’이라 하는데, 그 쇠털만큼이나 많은 날을 가리킬 때 우리 한아비들은 ‘쇠털같이 많은 날’이라고 비유적으로 써 왔다. ‘쇠털’의 발음이 ‘새털’과 비슷해서 잘못 전해진 것인데, 1957년에 한글학회에서 펴낸 『큰사전』에 “쇠털같이 많다.”라는 말이 오른 이래로 모든 국어사전에 “새털같이 많은 날”이 아닌 “쇠털같이 많은 날”이 올라 있다. 그러므로 “새털 같은 날”이나 “새털같이 하고많은 날”은 “쇠털 같은 날”, “쇠털같이 하고많은 날”로 써야 옳다. 그렇다고 ‘새털같이’라는 표현이 모든 경우에 잘못된 것은 ..

읽기 좋은 글, 듣기 좋은 말 - 피하면 좋은 말, 번역 투

일제 강점기, 유학생이던 소설가에게는 한국말보다 일본말이 더 익숙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일본으로 가서 일본말로 공부하고 생활했으니 어떤 말을 하려 할 때 머릿속에 일본말 표현이 먼저 떠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소설을 써 나갈 때는 일본말로 떠오르는 생각을 한국말로 옮길 때가 더 많았으며, 오히려 적당한 한국말이 금방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는 유명한 작가의 고백은 충격적인 사실이다. 어디 그뿐이랴. 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유명 인사들이 남긴 글에는 걸러지지 않은 영어 번역 투가 넘쳐났다. 이전 세대가 그랬듯이 미국 유학생들은 영어 표현을 익숙하게 썼고 논문과 기사 등 공식적인 글에 학식을 자랑하듯 영어 번역 투를 남겼다. 흔히 신문과 교과서에 실린 글을 두고 학생들에..

다사로운 손길

설을 맞아서 외지에 나가 살던 자녀들이 부모님을 찾아뵈면 비워 두었던 방에도 난방을 하게 되는데, 오랜만에 불을 때면 방바닥이 금세 뜨거워지지 않고 조금씩 온기가 올라온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알맞게 따뜻해’지는데, 이런 것을 ‘다습다’라고 말한다. “다스운 온돌방에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 어르신들이 “따신 방에”라고 말할 때의 ‘따신’은 ‘다스운’에서 비롯한 말이다. 그리고 ‘조금 다습다’라는 뜻으로 쓸 때는 ‘다스하다’라고 말한다. “다스한 봄 햇살이 툇마루에 비친다.”라고 하면 다스운 온돌방보다는 봄 햇살이 조금 덜 따뜻하다는 표현이다. 이런 다스함이 온돌방이나 햇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다. 사람에게 다스한 기운이 있을 때는 ‘다사롭다’라고 표현한..

가까운 측근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에, 낱말을 불필요하게 중복하거나 반복하는 일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아무개의 가까운 측근’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그런데 ‘측근’이란 말이 “곁에 가까이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까운 측근’이라고 하면 필요 없이 같은 뜻의 말을 반복해서 쓴 사례가 된다. 이때에는 ‘아무개의 측근’이라고 하거나 ‘아무개와 가까운 인물’이라고 말해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방송에서도 이렇게 뜻이 겹치는 표현들을 들을 수 있다. ‘미리 예고해 드린 대로’라는 말을 가끔 듣는데, ‘예고’가 “미리 알린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그 앞에 또 ‘미리’를 붙여 쓰는 것은 불필요한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예고해 드린 대..

쑥되고 말았다

발음이 잘못 알려져 쓰이고 있는 낱말 가운데, ‘쑥맥’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가리켜 ‘쑥맥 같다’고 한다. 이렇게 발음하다보니 풀이름인 ‘쑥’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때에는 쑥이 아니라 콩을 뜻하는 한자말 ‘숙’(菽) 자를 쓴다. ‘숙’이 ‘쑥’으로 발음되고 있는 것이다. 또 ‘맥’은 ‘보리 맥’(麥) 자이므로, 이 낱말은 ‘쑥맥’이 아니라 ‘숙맥’이다. ‘숙맥’은 ‘콩과 보리’를 가리킨다. 본디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는 한자 숙어에서 비롯된 말인데, 우리말로 풀면 ‘콩인지 보리인지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생김새가 아주 다른 콩과 보리조차 구별하지 못할 만큼 분별력이 무딘 사람을 ‘숙맥’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그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숙맥이라 한다. 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