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 2096

산수갑산은 어디일까?

힘든 일이지만 꼭 해내겠다는 의지를 밝힐 때, “산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어도”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이 ‘산수갑산’은 어디일까? 속담의 의미상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험한 곳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치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산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어찌된 일일까? 사실 ‘산수갑산’은 ‘삼수갑산’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이다. 산과 물의 경치를 뜻하는 ‘산수’란 말에 익숙해서, 또는 ‘산수’와 ‘삼수’의 발음을 혼동하여 흔히들 ‘산수갑산’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이 속담은 경치 좋은 곳에 간다는 뜻이 아니라, ‘험한 곳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니, ‘삼수’는 아주 험한 곳이어야 한다...

조촐한 자리란?

집에 손님을 맞이할 때, 애써서 갖은 반찬들을 한 상 가득 준비하고도 “차린 건 없지만 많이 잡수세요.”라고 겸손해 하는 것이 우리네 문화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경우로, 칠순 잔치 등에 청첩장을 보내면서 “조촐한 자리지만 꼭 참석해 주세요.”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는 ‘조촐하다’란 말을 ‘변변치 못하다’란 겸양의 표현으로 쓰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조촐하다’란 말은 본디 “아주 아담하고 깨끗하다”란 뜻을 가진 낱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자리를 마련한 쪽에서 쓸 말이 아니라, 초대받은 손님이 주인에게 “조촐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하고 칭찬할 때 쓰는 것이 알맞다. “아주 아담하고 깨끗한 자리”에 만족했다는 인사로 건네는 표현이다. 뿐만 ..

딴전 피우는 사람들

오래 전부터 전해 오는 관용구 가운데 ‘딴전을 부리다’, ‘딴전 피우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의 ‘딴전’은 ‘다른 전’에서 온 말이다.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를 ‘전’(廛)이라 한다. 허가 없이 길에 벌여놓은 가게를 지금은 ‘노점’이라 하지만 옛날에는 ‘난전’이라 했다. 아직도 쌀가게를 이르던 ‘싸전’과 생선가게를 뜻하는 ‘어물전’이 생활언어에 남아 있다. 딴전을 부린다는 것은 이미 벌여 놓은 자기 장사가 있는데도 남의 장사를 봐 준다거나, 다른 곳에 또 다른 장사를 펼쳐 놓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 ‘딴전’이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 말과 같은 뜻으로 ‘딴청’도 널리 쓰인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딴전 피우는 사람들이 눈에 많..

young鷄 50% 할인!

복날(중복)을 앞두고, 우리 동네 슈퍼마켓에서 보낸 광고 문자가 휴대전화기에 찍혔는데, “young鷄 50% 할인!”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복날 하면 삼계탕을 빼놓을 수 없다. 삼계탕 재료로 쓰이는 작은 닭을 ‘영계’라고 하는데, 이 광고 문자처럼 가끔 ‘영계’의 ‘영’을 어리다는 뜻의 영어 ‘young’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물론 ‘영계’가 어린 닭인 것은 맞지만, 이때의 ‘영’은 영어 ‘young’에서 비롯한 말이 아니라, 한자 ‘연할 연(軟)’ 자의 발음이 변해서 생긴 말이다. 병아리보다 조금 큰 어린 닭은 육질이 연해서 ‘연계’라 하다가 ‘영계’로 굳어졌다. 또는 약으로 쓴다 해서 ‘약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계’가 오늘날 ‘영계’로 변한 것은 발음이 닮은 데에도 그 까닭이 있..

주둥이와 아가리

사람의 입을 낮추어 말할 때 ‘주둥이’나 ‘아가리’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의 입을 빗대어 “주둥이를 내밀었다.”, “아가리를 벌렸다.”고 하면 상스러운 말(비속어)이 된다. 어느 방송사의 주말 연속극에서 “내 돈 받고도 떠들어대면 그 주둥이를 썰어버릴 것”이라는 대사가 방송되었다. 공공 방송에서 그와 같은 비속어를 쓰면 어찌 하는가 지적하니, 주둥이가 국어사전에 표준어로 올라 있다고 항변한다. 물론 ‘주둥이’와 ‘아가리’는 각각 고유한 뜻을 가지고 있는 표준어이기도 하다. 그 뜻을 살펴보면, ‘주둥이’는 일부 짐승이나 물고기 따위의 뾰족하게 나온 코나 입 주위의 부분을 이르는 말이다. 또, 그릇이나 병의 좁고 길쭉하게 나온 부분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강아지 주둥이’, ‘빈병 주둥이’라고 하면..

새것과 새로운 것

그동안 없다가 처음 생겨난 것은 ‘새것’이고, 이미 있었는데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이면 ‘새로운 것’이다. 그래서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을 개편했을 때, 처음 생긴 프로그램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라 하기보다는 ‘새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알맞은 표현이다. 다만, 프로그램 개편을 통하여 더 나은 방송을 약속한다고 말할 때에는 “우리 방송사는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를 찾아뵙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더 나아진 모습으로 시청자를 만나겠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이라는 신분으로 처음 국민을 만날 때에는 “새 대통령”이지, “새로운 대통령”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갖가지 개혁을 잘 추진하고,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쭉 펴지게 하면, 그때에는 우리의 “..

쫀쫀한 사람이 필요해!

집을 짓는 일은 빈틈없는 손길이 필요하다. 공공 시설물 또한 공기 타령, 예산 타령으로 설렁설렁 지어서는 안 된다. 세밀하고 쫀쫀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쫀쫀하다’라는 말에 익숙하지만 대개 “소갈머리가 좁고, 인색하며 치사하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듯하다. 그래서 방송이나 공식적인 글에서는 이 말을 표준말이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잘 쓰지 않는 듯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은 ‘존존하다’의 센말로서 당당한 표준말이다. ‘존존하다’는 “천을 짤 때, 곱고 올이 고르게 짜놓은 모양”을 뜻하는 말인데, 이 ‘존존하다’의 센말이 ‘쫀쫀하다’이다. 그러니까 ‘쫀쫀하다’고 하면, “천이 빈틈없이 잘 짜진 것”을 나타낸다. 그 때문에 한편으로 “소갈머리가 좁고 인색한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이 말의 “행..

신발이 벗겨질 때와 벗어질 때

쓰임새가 자주 혼동되는 낱말 가운데, ‘벗어지다’와 ‘벗겨지다’가 있다. 가령, “신발이 너무 커서 자꾸 벗겨진다.”라고 하면 옳은 말일까? 이야말로 ‘벗어지다’와 ‘벗겨지다’의 쓰임이 헛갈린 사례이다. 이때에는 “신발이 너무 커서 자꾸 벗어진다.”처럼 써야 한다. ‘벗어지다’와 ‘벗겨지다’는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들이다. ‘벗어지다’는 “입거나 쓰거나 신거나 끼거나 한 물건이 몸에서 떨어져 나갈 때” 쓰는 말이고, ‘벗겨지다’는 “벗김을 당하여 벗어질 때”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벗겨지다’는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힘이 작용하여 떨어져 나갈 때에 쓰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 크면 걸을 때마다 ‘벗어지곤’ 하는 것이고, 아이가 신고 있는 신발이 작아서 발에 ..

카페에 가려면 영어 잘해야 하나요?

최근 분위기가 좋은 카페들, 소위 말해 ‘인스타 감성’을 지닌 카페들이 누리소통망(SNS)에서 ‘감성 카페’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함께 스콘, 크로플 등 새롭게 등장한 디저트들까지 유행하면서 많은 디저트 카페가 생겨났다. 감성 카페가 유행하고 줄까지 서야 하는 유명한 곳이 되자, 많은 카페가 인스타그램 상에서 인기를 끈 카페들을 따라 ‘감성’이라는 명목으로 음료와 음식 이름을 모두 영어로 적고 있다. 인스타그램 상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ㄹ’카페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모든 음료 및 음식 이름 대부분을 영어로 표기하고 있다. 매장에서 한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쪽파가 옆에 놓여 있던 스콘의 이름은 ‘spring onion home made scones’였다. 해당 메뉴는 ‘쪽파크림..

자디잔 남편, 다디단 아내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이 비뚤어져 있기라도 하면 꼭 잔소리를 하고, 함께 장 보러 가면 두부 하나 사는 데도 시시콜콜 간섭하는 남편이 있다. 그 아내는 잔소리하는 남편의 볼에 그때마다 입을 맞춰주고, 살림살이에 간섭할라치면 먹음직한 안주 만들어 소박한 술상으로 남편을 달래준다. 자디잔 남편, 다디단 아내의 모습이다. '잘다'는 세밀하고 자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이나 성질이 대담하지 못하고 좀스럽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매우 길다는 뜻의 말이 '길디길다'이고 매우 멀다고 할 때에는 '멀디멀다'이지만, 매우 잘다고 표현하려면 '잘디잘다'가 아닌 '자디잘다'이다. 마찬가지로, 매우 달다고 말할 때 또한 '달디달다'가 아니라 '다디달다'이다. 이 말은 달콤한 사랑을 나타내거나 베푸는 정이 매우 두텁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