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 2096

“식폭행, 확찐자, 확대범...” 나만 불편한가요?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확대범’ 표현이 인상적이다. 이는 학대 범죄를 저지른 ‘학대범’을 살짝 바꿔 긍정의 뜻으로 만든 표현으로 ‘동물 확대범’(동물을 잘 보살펴 살을 찌움) 등으로 쓴다. 하지만 실제로 현재 많은 동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인 ‘동물 학대’를 이용해 만든 단어를 동물 친화적인 상황에 사용함으로써 동물 학대의 심각성을 약화한다는 우려가 있다. 심지어 이러한 언어유희는 원래 단어와 함께 쓰일 법한 수식어들과 자주 붙어 나온다는 점에서 더욱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가출하고 싶다는 여중생 2명을 데려와 두 달 동안 공부시킨 남성을 두고 ‘성적(成績) 확대범’(성적이 오르도록 함)이라고 부른 일까지 있었다. 이 남성은 선의를 베풀었음에도 뜻하지 않게 유괴범으로 몰려 경찰에 체포..

나름대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하는 말에 우리는 매우 익숙하지만, 온전한 표현은 아니다. ‘나름’이라는 말은 명사나 동사 다음에 쓰여서 ‘됨됨이에 달렸다’ 또는 ‘하기에 달렸다’란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말이 명사나 동사를 앞세우지 않고 혼자 쓰일 수는 없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란 말은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라든지,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 “자기 나름대로(또는 ‘그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라고 해야 온전한 표현이 된다. 요즘 젊은 층의 언어생활을 들여다보면 “나름 열심히 했다.”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이 또한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나름’은 의존명사이지 부사가 아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라든지 ‘~나름으로’, ‘~나름의’, ‘~나름이다’처럼 명사나 동사..

한가위 뫼돌보기

추석이 한 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설날을 ‘정월 대보름’이라고 하듯이, 추석은 ‘팔월 한가위’라고 말한다. 한가위 명절을 맞아 고향에 가면 꼭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집안 어른들 무덤의 풀을 깎고 깨끗이 다듬는 일이다. 이런 일을 표현할 때, 흔히 ‘금초’니, ‘벌초’니, ‘사초’니 하는 말들을 쓰고 있다. 비슷하지만 서로 조금씩 뜻이 다르다. ‘금초’는 ‘금화벌초’의 준말로서, 무덤에 불이 나는 것을 조심하고 때맞추어 풀을 베어 준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벌초’는 무덤의 풀을 깎아 깨끗이 한다는 뜻이고, ‘사초’는 오래된 무덤에 떼를 입혀서 잘 다듬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한가위 무렵에 무덤의 풀을 깎는 일은 ‘벌초’라고 한다. 중부 지방에서는 ‘금초’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

쇠고기 신고바치

우리말에는 어떤 말 뒤에 붙어서 그 직업을 나타내는 접미사가 여럿 있다. 주로 서민들의 생계를 위한 직업에 이러한 우리말 접미사가 붙어 쓰였는데, 대표적인 것들이 ‘꾼’과 ‘바치’와 ‘장이’라는 말들이다. 이들 가운데 ‘꾼’은 직업을 말하는 경우 외에도, 어떤 일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 예를 들면 “노름꾼”, “주정꾼”, “살림꾼” 등을 두루 일컫기 때문에, 직업에만 쓰일 수 있는 것은 ‘바치’와 ‘장이’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바치’란 말이 좀 낯설다. ‘바치’는 가죽신을 만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갖바치”로만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우리말에서 널리 쓰이던 접미사이다. 요즘엔 코미디언이나 개그맨이라 하지만, 예전엔 희극배우를 “노릇바치”라고 했고, 요즘의 연예인과 같은 광대나 재인을..

가장비와 거위영장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여러 가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미워하는 마음을 갖기도 한다. 요즘엔 사람이 미울 땐 욕이나 험담을 하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럴 때에 상대방에게 ‘놀림말’을 함으로써 마음을 풀었다. 놀림말은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놀리거나 흉을 볼 때 쓰는 말인데, 비속어나 욕설과는 달리 남을 저주하는 뜻이 없고 말 자체가 비속하지도 않으며, 언어 유희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가령, 생김새나 행동이 거친 사람을 ‘가장비’(; 장비를 닮은 사람)라고 부르거나 머리털이 부수수하게 일어선 사람은 ‘도가머리’, 그리고 재물에 인색한 사람은 ‘가린주머니’라 하는 등 대개 사람의 생김새나 성격, 특이한 습관 또는 이름으로 놀림말을 만드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놀림말 중에는 ‘거위영장..

양말과 호주머니

우리말에는 개화기 이후에 서양에서 들어온 물건에 ‘양(洋)-’을 붙여 이름을 지은 것이 많이 있다. 그 말들 가운데는 오랫동안 쓰이다보니까 마치 고유어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양말’이란 말도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말이다. 서양에서 버선과 비슷한 것이 들어오니까 버선을 뜻하는 ‘말’에 ‘양-’ 자를 붙여서 ‘양말’이라고 한 것이다. 물을 긷는 데 쓰는 질그릇 ‘동이’에 ‘양-’ 자를 붙여 ‘양동이’라 하였고, 서양에서 받아들인 잿물이라는 뜻으로 ‘양잿물’이라는 낱말을 만들어 써 왔다. 이 밖에도 ‘양배추, 양변기, 양송이, 양은냄비, 양재기, 양철, 양파’ 등 매우 많은 말들이 있다. 서양에서 온 물건에 ‘양-’을 붙인 것처럼, 중국에서 들여온 것에는 ‘호(胡)-’라는 한자를 붙여 썼다. ‘주머니’에 ..

희색만면하다

얼굴 가득히 기쁜 표정이 떠오르는 모습을 ‘희색이 만연하다’고 표현할 때가 있는데, 이는 바른 말이 아니다. ‘만연’은 “널리 뻗음” 또는 “번져서 퍼짐”이란 뜻을 지닌 낱말이다. 에는 “식물의 줄기가 널리 뻗는다는 뜻으로, 전염병이나 나쁜 현상이 널리 퍼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곧 “아카시아 뿌리가 만연하여 다른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라고 할 때나, “전염병이 만연하다.”라고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만연’이 동사로 쓰이면, 나쁜 현상이나 전염병이 널리 퍼진다는 것과 같이 부정적인 구실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만연하다’는 부정적인 뜻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희색은 ‘기뻐하는 얼굴빛’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신 풍조”라든가..

사전 두 배로 즐기기 - 사회가 변하면 말이 변하고,말이 변하면 사전이 변한다

상반기에 있었던 지방 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에 출제된 국어 문제 하나를 놓고 인터넷에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바로 다음 문제다. 출제자는 정답을 1번이라고 발표했는데, 여기에 대한 반박 글이 쏟아졌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반나절‘의 뜻풀이로 ‘하루 낮의 반’도 올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하룻낮의 반’이라는 두 번째 의미가 2008년 사전이 개정되면서 추가된 풀이이기 때문이다.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을 책자로 발간한 당시에는 ‘한나절의 반’이라는 의미만 있었는데, 이후 개정하면서 풀이가 추가된 것을 출제자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결국 해당 문제에 대한 논란은 전원 정답 처리로 마무리되었다. ▲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 ▲ 2008년 “표준국어대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