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 2096

군더더기 말은 불룩 나온 뱃살

가끔 “주민들의 해묵은 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해”라는 말을 듣는다. 군더더기가 붙은 표현이다. ‘숙원’이란 말이 오래전부터 품어 온 염원이나 소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다시, 많은 시간이 지나다는 뜻으로 쓰이는 ‘해묵다’를 붙여서 표현할 필요가 없다. 그냥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해”라고만 해도 충분하다.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다.”는 문장도 마찬가지이다. “난관에 봉착했다.”고 해도 충분히 의미 전달이 된다. ‘난관’이란 말이 일을 해 나가면서 부딪치는 어려운 고비를 이르기 때문에 ‘난관’ 앞에 붙은 ‘어려운’이란 말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무심코 쓰는 말들에 이렇게 필요 없는 군더더기가 붙어 세련된 언어생활을 방해하고 있다. “직장인의 목표는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문장의 경우, 한자말..

무료로 주고 공짜로 받고

우리가 평소에 쓰고 있는 말 가운데는, 낱말의 형태는 다른데 뜻은 비슷한 말들이 많이 있다. ‘무료’와 ‘공짜’라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한글문화연대가 지난 10월 15일에 거리(마포구)에서 나누어 준 한글 경조사 봉투를 ‘무료’라 하기도 하고 ‘공짜’라 하기도 하였다. 이 두 말은 같은 말로 보아 흔히 구별하지 않고 쓰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뜻을 잘 살펴보면, ‘공짜’라는 말은 “거저 얻는 물건”을 말하고, ‘무료’는 “요금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처럼 공짜는 물건이나 일을 제공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쓰지만, “설날 연휴 동안 고궁을 무료로 개방합니다.”처럼 무료는 제공자 입장에서 주로 쓰는 말이다. 지난번에 거리에서 나누어 주었던 한글 경조사 봉..

‘마이너스 옵션’은 ‘제외 선택제’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직무대리 신은향, 이하 국어원)은 ‘마이너스 옵션’을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제외 선택제, 제외 선택권, 제외 선택 사항’을 선정했다. ‘마이너스 옵션’은 기본 선택 사항에서 일부 사항을 수요자가 선택하지 않는 방식을 이르는 말이다. 문체부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하나로 국어원과 함께 외국어 새말 대체어 제공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문체부와 국어원은 지난 9월 1일(수)에 열린 새말모임*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미의 적절성과 활용성 등을 다각으로 검토해 ‘마이너스 옵션’의 대체어로 ‘제외 선택제, 제외 선택권, 제외 선택 사항’을 선정했다. * 새말모임: 어려운 외래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다듬..

읽기 좋은 글, 듣기 좋은 말 -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한 세탁소가 봄맞이 특별행사를 기획하였다. 철 지난 겨울옷이 많이 들어올 때라, 주인은 ‘세탁을 하시면 방충 처리는 무료’라고 문 앞에 크게 붙였다. 주인의 기대와 달리, 며칠이 지나도 매출에 큰 변화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세탁소 주인이 ‘겨울옷 방충 처리를 맡기시면 세탁은 무료’로 표현을 고치자 세탁물이 갑자기 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세탁소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세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돈을 쓰더라도 세탁이 무료인 쪽을 택하는 것이 더 큰 이득으로 보인다. 현대판 조삼모사인 셈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다.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방향을 정하여 말하고, 듣는 사람은 그 방향을 해석하는 데 익숙하다. 예를 들어 ‘네 쌍 중 세 쌍이 결혼을 유지한다’와, ‘네 쌍 중 한 쌍은 이혼한다’는 말..

싸가지와 거시기

주변에서 ‘싸가지’란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방송이나 공공장소에서 이 말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다. 아마 이 말이 비속어라고 생각돼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은 사투리(강원, 전남)이긴 하지만 비속어가 아니므로 방송이나 공공장소에서 사용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 말은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 될 것 같은 낌새’를 뜻하며, 표준말은 ‘싹수’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으면, “싹수가 있다.”, “싸가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잘될 가능성이나 희망이 애초부터 보이지 않으면 “싹수가 노랗다.”, “싸가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록 ‘싸가지’란 말이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싸가지’ 자체가 속어나 비어인..

컬러와 칼라

빛깔을 뜻하는 영어는 한글로 “컬러”라고 적는다. 이 [컬러]가 아직까지 우리 언어 환경에 남아 있는 일본식 발음의 영향으로 “칼라”라고 잘못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말에서는 [ㅓ] 모음이 없어서 이를 대부분 [ㅏ]로 발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과 소리가 비슷한 낱말로, 서양식 옷의 목 부분에 있는 깃을 말하는 외래어는 “칼라”가 맞다. 이 또한 일본말의 영향으로 아직 [카라]로 소통되는 경우가 흔한데, [칼라]로 발음해야 한다. 빛깔을 말하는 외래어는 “컬러”이고, 옷의 목 부분의 깃을 뜻하는 외래어는 “칼라”이다. 이처럼 우리말 가운데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이어 온 일본말의 영향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외래어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영어 “clinic”[클리닉]을 “크리닉”으로 쓰고 있는 것..

옷거리와 책거리

흔히, 몸매가 좋아 아무 옷이나 입어도 다 잘 어울리는 사람을 보고, “옷걸이가 좋으니 뭘 입어도 잘 어울린다.”고 추어준다. 이때에는 ‘옷걸이’가 아니라 ‘옷거리’라고 해야 한다. ‘옷걸이’는 “옷을 걸어 두는 도구”나 “옷을 걸어 두도록 만든 물건”이고, ‘옷거리’는 “옷을 입은 모양새”를 말한다. 우리가 사람을 보고 “옷거리가 좋다.”, “옷거리가 늘씬하다.”, “옷거리 맵시가 있다.”처럼 말할 때에는 모두 이 ‘옷거리’를 쓰는 것이다. ‘옷걸이’와 ‘옷거리’처럼, ‘책걸이’와 ‘책거리’도 구별해서 써야 한다. 너무 옷맵시에만 신경 쓰지 말고 책도 가까이하라고 이렇게 공평한 낱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책걸이’는 ‘옷걸이’처럼, “책의 한 귀에 고리를 만들어 나란히 걸어 놓을 수 있게 못을 박아 놓은..

매무시와 매무새

아이가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춘기가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부모가 아무리 ‘겉모습보다 실력’이라고 잔소리해도 이 무렵 아이들은 거의 ‘실력보다 겉모습’을 신봉하게 된다. 물론 첫인상이 겉모습에 좌우되는 현실에서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니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세태가 올바르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가 성형대국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수술까지 해가면서 겉모습을 바꾸지 않더라도, 밝은 표정과 깔끔한 옷맵시로 얼마든지 예쁘고 멋지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옷을 입을 때, 단정하게 매고 보기 좋게 여미고 하는 것을 ‘매무시하다’라고 한다. 이 말은 “매무시를 가다듬다”, “매무시를 잘 하다” 들처럼 ..

외래어인 듯, 순우리말인 듯 헷갈리는 단어들

2012년 한글날, 가수 나르샤는 트위터에 자신이 순우리말 예명을 쓰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게시글을 남겨 화제가 되었다. 여러 뉴스에서 나르샤의 글을 기사로 옮겼으며, 대중들은 나르샤가 순우리말이 아닌 외래어인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르샤뿐만 아니라 가수 ‘미르’의 이름 ‘미르’ 역시 외국어인 줄 알았던 한국어 이름으로 뽑혔다. ‘나르샤’, ‘미르’ 같은 이름들이 외국어나 외래어 같다고 뽑힌 이유는, 외래어 사용이 많아지면서 특정 발음이 외국어에서만 쓰는 발음이라 혼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르’ 같은 혀 굴리는 발음, ‘샤’ 같이 한국어에서 잘 쓰지 않지만 일본어나 영어에서 자주 쓰는 발음이 혼동을 준 것이다. 한국어는 순우리말인 고유어, 영어 등에서 유래한 외래어, 그리고 한자어 모두 ..

외국인이 보는 한글은 어떨까?

▲ 맥도날드와 방탄소년단이 협업한 한글 티셔츠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 중인 ‘성동일’이 적힌 의류 요즘 한류로 한국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한글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맥도날드는 약 한 달간 49개국에서 ‘비티에스(BTS) 세트’를 판매했다. ‘비티에스(BTS) 세트’는 맥도날드가 방탄소년단과 협업한 메뉴이다. 세트에 함께 나오는 소스 두 가지는 포장지에 소스 이름이 각각 한글로 적혀있고 맥도날드 직원은 ‘비티에스(BTS) 세트’ 판매 기간 동안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티셔츠에는 한글로 ‘ㅂㅌㅅㄴㄷ’과 ‘ㅁㄷㄴㄷ’라는 한글 자음이 적혀있다. 각각 방탄소년단과 맥도날드의 한글 자음이다. 이에 해외 누리꾼은 “나도 저 티셔츠가 갖고 싶다”, “당장 맥도날드 직원에 지원해야겠다.” 등의 반응을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