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홍범도와 아내 단양 이씨

튼씩이 2023. 9. 23. 15:59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기》에는 항일무장투쟁을 한 홍범도 장군과 그의 아내 단양이씨 이야기도 있습니다. 홍범도(1868~1943) 장군은 한동안 언론에 자주 오르내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홍장군의 아내가 단양 이씨(1874~1908)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단지 ‘단양 이씨’로만 알려졌다는 것은 그만큼 홍장군의 아내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이들 부부는 서로 만나기 전에 비구와 비구니였습니다. 비구와 비구니였다고 하니, ‘으잉?’하며 갑자기 눈동자가 커지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요즘 홍장군의 활동에 대해 많이 알려졌지만 그래도 홍장군이 한때 승려였다는 것까지는 그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요? 그러면 홍장군이 어떻게 하여 스님이 된 것일까요?

 

홍장군은 출가 전 1883년 평양 감영의 나팔수로 입대하였는데, 군교들의 부정부패와 사병에 대한 학대를 보다못해 그중 한 군교를 때려눕히고 병영에서 탈출하였습니다. 그리고 황해도 수안군 총령 아래에 있는 제지소에서 3년 동안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공장주가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대하고 임금도 주지 않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공장주를 때려눕히고,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가 스님이 된 것입니다.

 

이 무렵 단양 이씨도 강원도의 한 절에 비구니로 있었는데, 이때 홍장군을 만났습니다. 비록 비구와 비구니였지만 젊은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눈에 불똥이 튀니, 그들은 도저히 계율의 굴레에 갇혀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둘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그만 단양 이씨가 덜커덕 임신하였습니다. 그러니 도저히 승복을 입고 있을 수 없었겠지요. 하여 둘은 하산하여 부부가 되었고, 둘 사이에서 아들 홍양순과 홍용환도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홍장군은 달콤한 신혼의 꿈에 마냥 젖어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조선을 병탄하려는 일제에 항거하여 무장 투쟁으로 나서야 했으니까요. 홍장군은 포수들을 중심으로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이때부터 이미 일본군을 상대로 뛰어난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신출귀몰하는 홍장군을 ‘날으는 홍범도’라고 불렀습니다.

 

▲ 홍범도장군 탄생 150주년 기념우표

 

벌벌 기는 일본군이 날으는 홍장군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졸렬한 일본군은 단양 이씨를 잡아들여, 홍장군에게 귀순을 권하는 편지를 쓰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 단양 이씨가 이를 들어줄 리 만무합니다. 그러자 일본군은 단양 이씨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합니다. 여자의 몸으로 이런 가혹한 고문을 어떻게 이겨낼까요?

 

단양 이씨는 야만의 일본군에 이렇게 말합니다. “계집이나 사내, 영웅호걸이라도 실낱같은 목숨 없어지면 그뿐이고, 내가 그런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나더러 시킬 것이 아니라 너희 맘대로 해라. 나는 죽어도 안 쓴다.” 그리고 단양 이씨는 혀를 깨물며 고문에 대항합니다. 일제는 지독한 년이라며 단양 이씨를 다시 감옥에 처박았지만, 결국 단양 이씨는 고문의 여독에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들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큰아들 홍양순(1892~1908)은 아버지를 따라 의병으로 활동하다 1908년 6월 16일 함남 정평 전투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그리고 작은아들 홍용환은 1910년 10월 중국 길림성 왕청현 나자구에서 아버지 홍장군의 부하가 되어 활동하였으나, 그 후 행적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최근에 많은 사람의 반대에도 육사 교정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기로 하였지요? 그리고 이것도 모자라 해군 함정 홍범도함의 이름 변경을 검토한다고 하고, 심지어는 홍장군에 대한 서훈 취소도 검토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소식을 듣고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제 입에서 “이런 개XXX”하며 육두문자가 튀어나옵니다. 홍장군이 소련에 빌붙어 공산주의 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라고요? 이에 대한 반론은 이미 잘 알려졌기 때문에 제가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더 써 내려가다간 부들부들 떨리는 손 때문에 타자를 제대로 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끌려가 낯선 땅에서 쓸쓸히 죽어간 홍장군, 어렵게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지금 다시 후손들에게 욕을 당하고 있는 홍범도 장군. 장군이시여! 당신 앞에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죽어간 단양 이씨, 심신을 말살시키는 일제의 고문에 대항하려고 스스로 혀를 끊어버린 단양 이씨여! 당신이 일제에 고문당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자꾸 눈앞이 흐려집니다. 두 분 어리석은 후생들을 너그럽게 봐주시고, 그곳에서는 편안한 영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