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라], [철리], [물랄리], [생산냥]. 한눈에 봐도 이상한 이 글자들은 한국어 단어인 ‘신라’, ‘천리’, ‘물난리’, ‘생산량’의 표준발음이다. 이렇게 한국어는 ‘표준 발음법’에 의해 올바른 발음이 정해져 있다. 안 그래도 외울 것이 많은 한국어 문법인데 발음까지 외워야 한다니. 누군가에게는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표준 발음법에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규칙이 있지만, 이번 기사에서 다룰 것은 표준 발음법 제5장 제20항의 내용이다.
표준 발음법 제5장 제20항은 ‘ㄴ’은 ‘ㄹ’의 앞이나 뒤에서 [ㄹ]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신라’, ‘천리’, ‘물난리’의 ‘ㄴ’이 앞, 뒤의 ‘ㄹ’의 영향으로 ‘ㄹ’로 바뀌어 [실라], [철리], [물랄리]로 발음된 것이, 제20항의 대표적 예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다. ‘생산량’은 다른 단어들과 달리 ‘ㄴ’이 ‘ㄹ’로 변한 것이 아니라, ‘ㄹ’이 ‘ㄴ’으로 바뀌어 발음된다.
‘생산량’과 같은 단어는 표준 발음법 제5장 제20항의 예외로, ‘다만, 다음과 같은 단어들은 ㄹ을 [ㄴ]으로 발음한다’라는 내용으로 설명되어 있다. 결국 모든 단어가 규칙대로 발음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 각자 단어마다 올바른 발음이 정해져 있다니. 모든 발음을 외워야 하는 걸까? 한국어 화자들은 실제로 표준 발음법에 따라 바른 발음을 구사하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동국대학교 학생 11명을 대상으로 표준 발음법 제20항과 관련한 발음을 묻는 인터뷰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를 알기 전,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 있다. 어떤 단어는 제20항에 설명된 그대로 ‘ㄴ’이 [ㄹ]로 발음되고, 어떤 단어는 반대로 ‘ㄹ’이 [ㄴ]으로 발음되는 데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ㄴ’이 [ㄹ]로 발음되는 단어는 단일어인 경우고, ‘ㄹ’이 [ㄴ]으로 발음되는 단어는 합성어, 파생어와 같이 구성요소가 분석되는 단어인 경우다. 즉, 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의 발음을 통해 그들이 발음한 단어를 단일어로 인식하고 있는지, 구성요소가 분석되는 단어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조사한 결과부터 말하면, 원칙과 다르게 발음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신선로’의 경우 [신설로]로 발음, 즉 단일어로 인식하는 화자가 11명 중 11명이었지만 ‘광안리’는 11명 중 2명이 구성요소가 분석되는 경우로 인식해 [광안니]로 발음했다. ‘원룸’의 결과가 흥미로웠다. ‘원룸’은 구성요소로 분석되는 경우로 인식하여 [원눔]으로 발음하는 화자가 11명 중 2명이었으며, 나머지 9명은 단일어로 인식해 [월룸]으로 발음했다. ‘원룸’의 경우 영어 ‘one room’에서 유래한 외래어로, 구성요소가 분석되는 단어로 볼 수 있으나 대학생 11명 중 무려 9명은 ‘원룸’을 단일어로 인식한 것이다. ‘온라인’의 결과도 비슷했다. ‘온라인’은 ‘원룸’과 같이 11명 중 9명이 단일어로 인식해 [올라인]으로 발음했다. ‘온라인’은 ‘원룸’과 비슷하게 영어 ‘on-line’에서 유래한 외래어다.
이번 조사에서 알 수 있듯, 국어에는 ‘표준발음’이 존재하나, 화자마다 다른 발음 양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는 화자가 단어를 바라보는 인식이 담겨 있다. 사람마다 다른 현실 발음을 가진 것은 단순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각각의 발음에는 단어에 대한 각자의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1기 이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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