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khan.co.kr/article/202505192043035
[기고]대선 구호 ‘케이 이니셔티브’, 부적절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중요 선거 구호 중 하나가 ‘케이 이니셔티브’이다. 먹고사는 ‘먹사니즘’, 행복하고 품격 있게 잘사는 ‘잘사니즘’, 그리고 이 둘을 싸안고 문화와 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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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대선 구호 '케이 이니셔티브' 말 바꾸라는 주장을 경향신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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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중요 선거 구호 중 하나가 ‘케이 이니셔티브’이다.
먹고사는 ‘먹사니즘’, 행복하고 품격 있게 잘사는 ‘잘사니즘’, 그리고 이 둘을 싸안고 문화와 민주주의 등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진짜 대한민국’. 그런데 문화 매력(소프트파워)으로 세계를 선도하자는 구호는 ‘케이 이니셔티브’란다. 참으로 부적절한 구호다.
첫째,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다. 2020년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에서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할 때 ‘이니셔티브’라는 단어를 이해한다고 답한 국민은 16.4%에 불과했다. 70대 이상에서는 7% 남짓이 이해한다고 답했다. 단순히 단어 뜻이 그러한데, 거기에다 새로운 의미까지 부여한 ‘케이 이니셔티브’라니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
둘째, 통합을 저해한다. 좌우 갈등, 남녀 갈등, 지역 갈등, 빈부 갈등을 넘어서서 사회를 통합하겠다는 좋은 뜻을 품은 후보가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를 갈라 칠 위험이 있는 이런 구호를 내건다면, 그것이 통합에 도움이 될까? 많이 배워 외국어에 능한 사람의 능력은 그의 노력에 따른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노력과 능력의 부족이니 알아서 기라는 신호로 오해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필요하지 않음에도 외국어를 써서 자신을 과시하는 ‘잘나니즘’이 요란하다. 배운 자들의 이런 오만함을 대통령 후보가 나서서 합리화한다면 못 배운 사람들은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가.
셋째, 문화국가 원리에 맞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섞어 쓰는 일이 전혀 낯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 문화는 우리말글로 상상하고 지어가는 것임이 분명하다. <기생충> <폭싹 속았수다> 등 사례는 너무도 많다. 이에 비추어 보면 케이 이니셔티브는 구호의 목적과 표현 방식이 서로 안 어울린다. 이런 구호 아래서는 영어로 도배된 정책들이 무성하게 퍼질 위험이 높다. 그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협하고 우리 문화에서 기운을 빼버린다.
시계 공장에 다니며 어렵사리 공부한 소년공 출신 이재명 후보는 분명 <전태일 평전>을 읽었을 것이다. 약자에 대한 이 후보의 관심과 배려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겠는가?
전태일은 주요 어휘가 모두 한자로 적혀 있던 근로기준법과 그 해설서를 마주하고는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면서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어려운 말과 글은 어떤 국민에게는 너무나도 높은 장벽인 것이다.
이미 발표했으니 바꾸기에 뭣하다고 주저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바꿔야 한다. 알쏭달쏭 영어 구호가 멋지고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을 거라는 계산을 실용주의로 착각하면 안 된다. ‘세계 선도’든 ‘세계 주도’든 과감하게 새말로 바꾸는 흔쾌함을 보여주기 바란다.
국민의 목소리가 옳다 싶으면 곧바로 반영하는 태도, 그래야 실용주의자답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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