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084 – 꽃나이

튼씩이 2019. 7. 3. 07:29

사람의 한평생을 한뉘나 한 살이라고 한다. 한뉘의 ‘뉘’는 때나 세상, 평생을 뜻하는 말이다. ‘누리’도 세상을 가리키는데, ‘뉘’와 ‘누리’가 합쳐진 ‘뉘누리’는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가리킨다. 그만큼 세상이라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 소용돌이에 던져진 것처럼 세차고 어지러운 흐름 속에서 갈피를 잡기 힘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지만, 그 이런저런 한세상 속에 수많은 곡절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사람의 살이이고, 살이를 살이답게 해주는 것이 또 그런 곡절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의 한뉘는 날과 달 그리고 해로 채워져 있다. 나달은 날과 달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 세월을 뜻하기도 한다. 날과 달을 한자로 바꾸면 일(日)과 월(月)이 되는데, 일월(日月) 역시 세월을 뜻하는 말이다. 세월(歲月)이라는 말도 해 세, 달 월이니 마찬가지로 ‘달과 해가 모아져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세월의 동의어로는 나달과 일월 말고도 광음(光陰), 세화(歲華), 연광(年光), 연화(年華), 오토(烏兎) 같은 것들이 있다. 광음은 원래 햇빛과 그늘, 다시 말해 주야(晝夜)와 같이 낮과 밤이라는 뜻이었으나 뒤에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로 바뀌었다. 연화라는 말은 낯설지만 홍콩 왕가위 감독이 만들고, 양조위와 장만옥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화양연화>의 그 ‘연화’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꽃다운 시절’ 또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뜻이다. 우리말 꽃나이, 한자말 방년(芳年)과 통하는 말이다. 오토는 세월처럼 해와 달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까마귀 오(烏)는 해를, 토끼 토(兎)는 달을 상징한다. 해 속에는 발이 세 개인 까마귀가 살고, 달 속에는 옥토끼가 산다는 고대의 전설에서 비롯된 말이다. 발이 세 개인 까마귀가 바로 왕년의 인기 드라마 <연개소문>과 <주몽>에 고구려의 상징으로 나오는 삼족오(三足烏)인데, 삼족오를 까마귀가 아니라 ‘검은 새’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꽃나이 (명) 여자의 한창 젊은 나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쓰임의 예 – 18살 꽃나이 소녀답게 노란색 상의와 하의 청바지의 간편한 차림으로 입국장에 들어선 사라포바는 수많은 내외신 언론과 팬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 약 1분여 동안 포즈를 취했다. (<사라포바, 1년 만에 한국 방문>이라는 제목의 연합뉴스 기사에서)


             -내 두 살 때 아버님은 스물하나 앳된 꽃나이/이 세상 마지막 하지할 제 사력을 다해 퉁소를 부셨다고/아버님의 애절 망극한 사연/소자는 긴긴 세월 지나 자나 깨나 한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기형의 시 <퉁소 소리>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나달 – 날과 달을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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