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땅거미가 내린다’는 말을 들으면, 그때는 아직 타란툴라 같은 독거미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셸로브(Shelob) 같은 거미를 본 적도 없었지만, 어쨌든 그런 무섭고 징그러운 거미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거나 땅속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올 것만 같아서 온몸이 오싹거리곤 했다. 땅거미는 ‘해가 진 뒤 어스레한 동안’을 뜻하는 말로, 한자말로는 ‘박야(薄夜)’나 ‘석음(夕陰)’이라고 한다. 사전의 뜻풀이를 그대로 따르자면 땅거미는 때, 어둑발은 광선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위의 예문에 땅거미를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을 보면 호환이 가능한 말들인 것 같다. 사전은 어둑발과 비슷한 형태인 어둑밭은 ‘땅거미의 잘못’, 어둑살은 ‘땅거미의 사투리’로 처리하고 있다.
어둑발은 ‘어둑하다’에서 비롯된 말인데, ‘어둑하다’는 ‘제법 어둡다’ 또는 ‘되바라지지 않고 어수룩하다’는 뜻이고, ‘어둑’이 한 번 더 붙은 ‘어둑어둑하다’는 ‘사물을 똑똑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어둡다’는 뜻이다. 어둑새벽은 날이 밝기 전의 어둑어둑한 새벽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두커니’와 비슷한 모양인 ‘어두커니’는 ‘어둑새벽에’라는 뜻을 가진 어찌씨다. 염상섭의 소설 『이십대에 들어서』에는 “야, 새벽 도둑이냐? 그렇게 어두커니 어딜 갔더란 말이냐?” 하는 대목이 나온다.
밤 또는 어둠은 언제나 귀신들의 차지다. 가위나 저퀴, 청계, 뜬것, 두억시니 같은 귀신들은 사람을 못살게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귀신들인데, 귀신 가운데는 어둑서니 같은 어설픈 귀신도 있다. 캄캄한 밤에 갑자기 나타나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한없이 커지는 귀신을 그슨대나 어둑서니라고 하는데, 그슨대는 사람을 해치지만, 어둑서니는 놀라게만 할 뿐 해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둑발 (명) 사물을 뚜렷이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빛살.
쓰임의 예 – 짧은 초겨울 해도 이젠 저물어서 어둑발이 내리고 있었고…. (김주영의 소설 『달맞이꽃』에서)
벌써 두터워진 어둑발 때문에 낯바닥을 분명히 볼 수는 없겠지만, 몸태 동작이 나이 아직 젊은 여자인 것이 느껴진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어둑어둑하다 – 사물을 똑똑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