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이 동학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농민들에게는 사람을 생각하기 이전에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베풀어주는 땅, 논밭이 곧 섬겨야 할 하늘이자 스승이자 임금일 것이다. 밭 전(田) 자만 하더라도 임금 왕(王) 자를 가로세로로 겹쳐 놓은 모양이지 않은가. 땅은 그들의 눈물과 땀과 한숨을 거두어 기쁨과 보람과 희망의 빛나는 열매로 돌려주는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그들이 땅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씨 뿌린 자 거두리라”는 평범한 진리인 것이다.
농사가 아니라 논사, 농민이 아니라 논민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농민들에게 소중한 존재인 논은 논 답(畓) 자에 물 수(水) 자가 버티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상답(上畓), 즉 좋은 논으로 치는 논은 모두가 물을 대기에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고래실은 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은 기름진 논, 골채는 골짜기에 있어서 물 대기가 편한 논, 고논은 봇도랑에서 맨 먼저 물이 들어오는 물꼬가 있어서 물끈이 좋은 논이다. 바닥이 깊고 물이 늘 있어서 기름진 들은 구렛들이라고 한다. 물끈은 보(洑)에서 논까지 물이 들어오는 길이고, 물꼬는 논에 물이 넘나들도록 만든 어귀를 말한다. 물을 대거나 빼려고 논둑에 뚫어 놓은 구멍은 수멍, 논물이 빠져 나가도록 뚫은 작은 구멍은 우리구멍, 알맞게 괸 나머지 물이 저절로 다음 논으로 흘러 넘도록 논두렁을 낮춘 곳은 무넘기라고 한다.
좋지 않은 논으로는 논바닥이 비스듬하기 때문에 물이 쉽게 빠져 잘 마르는 엇답, 물을 댈 수가 없어 비가 온다는 신호인 천둥이 치기만을 기다리는 천둥지기, 곧 천수답(天水畓) 같은 것들이 있다. 깊드리는 깊은 바닥에 박힌 논, 샘받이는 샘물이 나거나 샘물을 끌어 대는 논, 수렁논은 수렁처럼 무른 개흙으로 된 논, 다랑논은 비탈진 산골짜기에 층층으로 있는 좁고 작은 논이다.
높드리 (명) ① 골짜기의 높은 곳.
② 높고 메말라서 물기가 적은 논밭.
쓰임의 예 – 우리는 고개티를 지나 젖봉이 흘러내린 높드리를 빠져 들어갔다. 숲이 짙었고,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시끄러웠다. (김원일의 소설 『노을』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고래실 – 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은 기름진 논.
'지난 게시판 > 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카테고리의 다른 글
093 – 바리 (0) | 2019.07.12 |
---|---|
092 – 바람 (0) | 2019.07.11 |
090 – 잡도리 (0) | 2019.07.09 |
089 – 드난 (0) | 2019.07.08 |
088 – 뒷바라지 (0) | 2019.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