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178호) 표준어 ‘갓길’ 놔두고 ‘길어깨’가 뭡니까

튼씩이 2019. 10. 3. 11:49

얼마 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재미나다기 보다 좀 딱한 선간판(입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갓길에서 공사 중인지 곳곳에 세워둔 선간판에는 "길어깨 없음", “노견 없음”이라고 적혀있었지요. 길을 사람처럼 생각하여 ‘길’에 ‘어깨’를 붙이고, 길 로(路)에 어깨 견(肩)을 붙여놓았나 봅니다. 그런데 좀 더 가다보니 이번에 “갓길 없음”이라고 써놓았습니다. 도대체 같은 도로공사가 붙인 이름이 이렇게 다른 것은 어이없는 일입니다.



 

표준말 ‘갓길’이 아니라 ‘길어깨 없음’이라고 써놓은 길팻말


▲ 표준말 ‘갓길’이 아니라 ‘길어깨 없음’이라고 써놓은 길팻말



 

아예 일본식 한자말을 그대로 한글로 바꿔 써놓은 ‘노견’


▲ 아예 일본식 한자말을 그대로 한글로 바꿔 써놓은 ‘노견’

 



그런 두 가지 말 가운데 어떤 것이 맞는 말일까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갓길’을 찾아보면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 도로 따위에서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폭 밖의 가장자리 길. 위급한 차량이 지나가거나 고장 난 차량을 임시로 세워 놓기 위한 길이다.”라고 풀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노견(路肩)”을 찾아보니 “갓길의 비표준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길어깨’는 올림말에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길에도 사람처럼 어깨가 있나요? 도대체 이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이 말은 원래 영어 “road shoulder”를 가져다가 일본 사람들이 ‘길어깨’를 뜻하는 ‘路肩(노견, ろかた)’으로 바꿔 쓴 것을 대한민국의 도로공사가 가져다 한자를 그대로 우리말로 바꿔 “길어깨”라고 쓴 것입니다. 물론 영어에서 “road shoulder”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이 노견 또는 길어깨가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요. 그러나 길은 사람으로 볼 수 없기에 길에 ‘어깨’를 붙이는 것은 우리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갓길이 우리말이면서도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분명히 우리말이 있는데도 일본식 한자말을 쓰는 얼빠진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깃길 없음’이라고 제대로 써놓은 팻말


▲ ‘깃길 없음’이라고 제대로 써놓은 팻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