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194호) 옛 사람들 처마에 소나무 볕가리개를 했다

튼씩이 2019. 10. 25. 08:33

“신해일에 관청에서나 여염집에서 소나무 차양 만드는 것을 금지하였다. 매년 더운 여름에 궁궐도감이 왕의 침전에 소나무로 차양을 만들면 그들에게 은병(銀甁, 화폐) 두 개를 내려주는 전례가 있었다. 그런데 이때 왕이 ‘관청과 여염집의 소나무 차양을 금지하는데 나만 해서야 되겠는가?’ 하면서 띠를 엮어서 차양을 만들도록 바꾸니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도감 관리들이 은병 두 개를 잃었구나.’라고 했다.

 

이는 《고려사》5 충렬왕 3년(1277) 기록에 나오는 얘기로 고려시대 이미 처마 끝에 소나무로 가림막을 하는 소나무 볕가리개(차양, 遮陽) 풍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생솔가지를 꺾어 엮어서 매달아 더위를 막는 것이지요. 조선 중기의 유생 오희문(吳希文)이 쓴 《쇄미록(瑣尾錄)》에도 “소나무 차양을 만들려 해도 긴 나무가 없어서, 소즐이 종과 말 세 필을 끌고 유선각의 호산에 가서 소나무를 베어왔다.”라는 구절이 있어 조선시대에도 그 풍습이 계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홍도 <단원도>, 수묵채색화, 지본담채(紙本淡彩) , 78.9 x 135 cm, 개인소장


▲ 김홍도 <단원도>, 수묵채색화, 지본담채(紙本淡彩) , 78.9 x 135 cm, 개인소장

 



한옥의 처마는 비를 가리는 데에 썼을 뿐 아니라 실내조명을 조절하는 역할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처마를 길게 하면 빛이 적게 들어왔고 짧게 하면 비를 가리기가 어려웠지요. 따라서 이미 지은 집이 처마가 짧으면 여름에 햇볕이 덜들어 오도록 소나무 차양을 덧대어 보충한 것입니다. 이런 소나무 차양의 실제 모습은 김홍도가 자기집 뒤뜰을 그린 <초당도>가 잘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