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281호) 자전거를 타는 선교사 ‘나리’라 불렀다

튼씩이 2020. 2. 24. 08:18

“서재필 박사는 남 먼저 자전차를 타고 다니엿다. 그는 갑신년 김옥균 정변 때 멀니 미국에 망명하야 그 나라에 입적까지 하엿다가 그후 13년만에 정부의 초빙에 의하야 귀국함에 미국에서 타던 자전차를 가지고 와서 타고 다니엿는데 그때에 윤치호 씨는 그에게 자전차 타는 법을 배워가지고 또 미국에 주문을 하야다가 타고 다니엿다. 우에 말한 것과 가티 그 때만 하야도 아즉 일반의 지식이 몽매한 까닭에 그들의 자전타 차고 다니는 것을 보고 퍽 신기하게 생각하야 별별 말을 다 하되 서 씨는 서양에 가서 양인의 축지법을 배워가지고 하루에 몃 백리 몃 천리를 마음대로 다니더니 윤 씨는 대데가전의 차력약(借力藥)이 잇서서 남대문을 마음대로 훌훌 뛰여 넘어 다니녀니하고 또 자전차를 안경차니 쌍륜차니 하는 별명까지 지여섯다.”

 

위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16~17호(1928년 12월 1일 발행)》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축지법을 써서 하루 몇백 리 몇천 리를 마음대로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한말 조선에 온 선교사이며 의사였던 알렌이 1908년 펴낸 책 《조선견문기》에도 선교사들이 자전거를 처음 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조선 사람들의 반응을 적은 내용에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자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에 조선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었고, 구경꾼들의 요청에 못 이겨 길을 여러 번 오고 가고 해야 했지요. 조선 사람들은 선교사들을 ‘나리’라고 부르며 최고의 대우를 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자전거를 탄 선교사 ‘나리’라고 불렀다.(그림 이무성 작가)


▲ 자전거를 탄 선교사 ‘나리’라고 불렀다.(그림 이무성 작가)

 

지금처럼 대중교통을 타고 병원을 드나들 수 있는 시절이 아닐 때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선교사들을 통해서 들어온 서양문물이 마냥 신기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환자를 보려고 왕진을 하러 급히 가야 할 때도 자전거를 타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신문만 구독해도 자전거를 경품으로 주는 시대지만 100여 년 전 조선땅에 나타난 자전거는 신기한 요술덩어리 그 자체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