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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잠녀는 일본의 해녀보다 추위에 강하다. 또 임신이나 월경 중이라도 꺼리지 않고 사철 작업을 한다. 잠수를 할 때는 ‘소중기’하고 부르는 남색 무명의 수영복을 입는다. 앞쪽은 젖가슴까지 덮지만, 뒤쪽은 등이 다 드러나고 가느다란 옷감이 열십자로 아래쪽에 붙어 있다.” 이는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제주에 머물며 제주문화를 연구했던 일본인 이즈미 세이이치 씨가 쓴 《제주도(濟州島)》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에 따르면 해녀들은 ‘소중기’를 입고 물질을 했습니다. 소중기는 소중이, 수견, 도곰수견, 물옷이란 말로도 부르지요.
‘소중기’는 제주말로 속옷을 뜻하는 것으로 원래 집에서 짠 무명으로 만들었는데 차츰 직물공장에서 만든 광목을 썼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소중기’ 하면 흰옷을 떠올리지만 제주 특산물인 감으로 물들인 갈옷을 선호하는 제주답게 갈옷 소중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는 미역을 짊어져도 때가 덜 타고 생리중이어도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소중기는 넉자 가량(가로 25cm, 세로 200cm)의 무명옷감으로 짓는데 조각보 방식으로 한 번에 접어 만든다고 하지요. 다만 가슴 부분은 다른 옷감으로 덧대기 때문에 두 겹이 되어 자연스레 젖가슴을 보호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소중기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해녀들은 이제 바다 속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고무옷을 입고 물질을 합니다. 그 덕분에 오랜 시간 물질을 할 수 있어서 그만큼 소득이 늘어났습니다. 다만, 고무옷은 쉽게 가라앉지 않아서 무거운 납덩이를 매달고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고, 바다 물이 더워질 때는 고무옷을 입은 탓에 살이 짓무르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답니다. 편리함과 늘어난 소득 대신 또 다른 구속을 감내해야 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노름꾼이 소중기를 입고 노름을 하면 돈을 딴다.”라는 믿음이 있어 빨아서 말리려고 돌담에 걸쳐두면 종종 도둑맞기도 한다는 해녀 속옷, 소중기는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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