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353호) 정조, 과거를 위한 독서는 진정한 공부 아냐

튼씩이 2020. 6. 3. 08:18

“요즈음은 평소에 독서하는 사람이 드무니, 나는 이 점이 무척 이상하게 생각된다. 세상에 책을 읽고 이치를 연구하는 것만큼 아름답게 여길 만하고 귀하게 여길 만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일찍이 '경전을 연구하고 옛날의 도를 배워서 성인(聖人)의 정밀하고도 미묘한 경지를 엿보고, 널리 인용하고 밝게 분변하여 천고(千古)를 통해 판가름 나지 않은 안건에 대해 결론을 내리며, 호방하고 웅장한 문장으로 빼어난 글을 구사하여 작가(作家)의 동산에서 거닐고 조화의 오묘함을 빼앗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주 간의 세 가지 유쾌한 일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어찌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나 옛사람의 글귀를 따서 시문을 짓는 학문을 가지고 견주어 논의할 수 있는 바이겠는가.”

 

이는 1814년(순조 14)에 펴낸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에 들어 있는 《일득록(日得錄)》의 일부입니다. 여기서 정조는 “요즈음은 평소에 독서하는 사람이 드무니, 나는 이 점이 무척 이상하게 생각된다.”라고 지적합니다. 이는 지금 시대 사람들에게도 지적하는 말로 들립니다. 사실 전철을 타고보면 승객들은 슬기전화(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지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는 정도니까요.

 

 

▲ 이길범 화백이 그린 정조임금의 국가표준영정(왼쪽),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책 《일득록(日得錄)》,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조는 이어서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나 옛사람의 글귀를 따서 시문을 짓는 학문을 가지고 ‘작가(作家)의 동산에서 거닐고 조화의 오묘함을 빼앗는 것’과 견주어 논의할 수 있는 바이겠는가.”라고 개탄하며, 좋은 대학에 가고, 출세하기 위해서 하는 요즘 사람들의 책읽기도 개탄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일득록》은 신하들의 눈에 비친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책으로 책을 펴내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반성의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라며, 지나치게 좋은 점만 강조하여 포장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