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364호) 별명이 ‘삼일 잡지’였던 잡지 《별건곤》

튼씩이 2020. 6. 18. 08:25

“아픈 생활에서 때때로는 웃어도 보아야겠다. 웃어야 별수는 없겠지마는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것도 아니다. 우리는 형편도 그렇게 되지 못하였지만 웃음을 웃을 줄도 모른다. 자! 좀 웃어보자! 입을 크게 벌리고 너털웃음 웃어보자. 그렇다고 아픈 것을 잊어서도 아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벌써 1년이나 전부터 취미와 과학을 갖춘 잡지 하나를 경영해 보자고 생각하였었다.“

 

이를 보면 마치 지금 우리의 상황을 두고 독백하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는 1926년 11월 1일 자로 창간된 대중잡지 《별건곤(別乾坤)》의 편집후기인 〈여언(餘言)〉의 일부분입니다. 《별건곤》은 3·1만세운동이 낳은 큰 잡지 《개벽(開闢)》이 1926년 8월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 폐간당하자 그 대신 나온 잡지이지만, 《개벽》과는 그 성격을 전혀 달리하여 취미와 실익을 위주로 한 대중잡지였지요. 특이한 《별건곤》이란 제호를 보면 ‘건곤(乾坤)’은 ‘천지(天地)’와 같은 뜻이고 보니 ‘별천지(別天地)ㆍ별세계(別世界)’ 쯤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별건곤(別乾坤)》 창간호,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그런데 《별건곤》이 취미잡지라고는 하지만 그 창간호 여언(餘言)에, 취미라고 무책임한 독물(讀物, 읽을거리)만을 늘어놓는다든지, 혹은 방탕한 오락물만을 기사로 쓴다든지 하는 등 비열한 정서를 조장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취미는 할 수 있는 대로 박멸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취미잡지를 시작하였다.’라고 하여, 예사 취미잡지가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별건곤》은 거의 8년이라는 오랜 기간 펴냈는데 1931년 2월까지 200쪽가량의 분량으로 한 권에 50전에 판매되다가, 1931년 3월부터 60쪽 정도 분량의 5전 잡지로 발행되다가 결국 1934년 8월에 종간되었습니다. 당시 《별건곤》의 발행 부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값을 5전으로 내린 뒤 독자층이 지식인 중심에서 일반 대중으로 급격히 퍼졌고, 《별건곤》은 나온 뒤 3일 만에 절판된다고 하여 ‘삼일 잡지’, ‘절판 잡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