那將月姥訟冥司(나장월모송명사) 월하노인과 함께 가 옥황상제에게 하소연하여
來世夫妻易地爲(내세부처역지위) 내세에는 내외가 처지를 바꾸어서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 나 죽고 그대는 천 리 밖에 살아남아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 그대가 나의 이 슬픔을 알게 할까?
이는 추사 김정희의 <도망(悼亡)> 곧 ‘죽은 아내를 생각하여 슬퍼함’이라는 한시입니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 있는 사이 그의 나이 57살인 1842년 11월 13일 본가 예산(禮山)에서 아내 예안 이씨가 죽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는 추사는 계속 아내에게 편지를 썼지요. 그 가운데는 특히 제주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젓갈 등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추사의 한글편지는 40통인데 그 가운데 대부분이 아내에게 쓴 것이라고 하지요.
▲ 추사 김정희가 아내에게 쓴 한글 편지 (왼쪽은 봉투),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부인이 죽은 지 한 달이 지난 뒤인 12월 15일에야 부인이 죽었음을 안 추사는 죽은 부인에게 반찬 투정했음을 알고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곤 ‘죽은 아내를 생각하여 슬퍼함’이란 한시를 쓴 것입니다. 그러면서 ‘혼인을 관장하는 월하노인(月下老人)을 데리고 저승에 가 옥황상제에게 하소연하여 내세에는 자신이 부인으로, 아내는 남편으로 바꾸어 태어나면 부인이 지금 이 나의 슬픔을 알 수가 있을까‘ 하는 넋두리를 합니다.
추사는 위대한 예술가요 학자였지만 구어체로 현장감 있게 쓴 한글편지를 보면 자잘한 욕심은 물론 희로애락을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는 평가입니다. 제주까지 길면 일곱 달이나 걸리는 편지에 그는 아내에게 밑반찬 일체를 보내라 하면서 김치가 짜다, 무장아찌는 변했다, 민어는 연하고 무름한 것을 보내라는 등 온갖 투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름과일이 한창 때오니 부디 참외 같은 것을 많이 잡수시게.” 같은 얘교 넘치는 편지도 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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