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398호) 임금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신하 '불소지신'

튼씩이 2020. 8. 5. 07:27

조선시대 세자를 가르친 것은 나중에 임금을 만들기 위한 영재교육이었기에 세자를 가르치기 위한 별도의 기관을 두었습니다. 태조 때에는 그저 ‘세자관속(世子官屬)’이라 하여 관리만 두었는데 세조 때 드디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을 설립하였습니다. 시강원 설립 목적은 유학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임금인 세자에게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적 지식과 도덕적 자질을 기르기 위함이었지요.

 

▲ ‘세자시강원’에 걸어두었던 <춘방> 편액으로 효명세자의 예필(국립고궁박물관)

 

이때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관들은 모두 당대의 실력자들이 임명되었습니다. 세자의 사부는 물론 가장 고위직인 영의정과 좌ㆍ우의정이 맡았지요. 하지만, 이들은 나랏일로 바빴기 때문에 실제로 세자를 가르치는 사람은 빈객(賓客) 등 전임관료들이었는데 주로 문과 출신의 30~40대의 참상관(參上官, 정3품에서 종6품 관료)으로 당상관 승진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강관 박세희(朴世熹)가 아뢰기를, ‘대신(大臣)을 대하는 데는 반드시 예모(禮貌)로써 하여야 합니다. 옛날에는 <불소지신(不召之臣)>이 있으니, 그에게 배운 다음에 그를 신하로 삼는다.’ 하였는데, 이와 같은 자는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중종실록》 13년 12월 26일 기록입니다. 여기서 <불소지신>이라 함은 ‘함부로 부르지 못할 신하’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세자가 뒤에 임금이 되어도 스승의 예로서 대했습니다. 요즘 학생이나 학부모가 선생님을 함부로 대했다는 기사가 종종 보이는데 예전엔 스승은 임금도 함부로 하지 않았음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