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420호) 무가지보 세한도, 국민 품에 안기다

튼씩이 2020. 9. 4. 07:29

금전으로는 그 값어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무가지보, 국보 제180호 <김정희 필 세한도(歲寒圖)>가 지난 8월 21일 국립중앙박물관 품에 안겼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세한도’는 조선 후기 올곧은 선비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는 문인화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제주도에서 유배 중이던 스승 추사를 위해 그의 제자였던 역관 이상적은 새롭게 들어온 중국의 문물 자료를 모아 스승에게 보내주는데, 이를 고맙게 여긴 추사가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 선물한 것이 바로 ‘세한도’입니다.

 

▲ 추사 김정희의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

 

그런데 이 세한도는 해방 직전인 1944년 일본인 수집가 후지스카 지카시(藤塚隣)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안 서예가 손재형은 연일 공습으로 아수라장이 된 도쿄의 후지즈카 집에 100일 동안 날마다 찾아가 문안인사를 하며, 세한도를 내달라며 간곡히 청을 했지요. 그에 감복한 후지즈카는 "그대 나라의 물건이고, 그대가 나보다 이 작품을 더 사랑하니 가져가라."라며 돈 한 푼도 받지 않고 내주었다는 아름다운 일화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손재형이 세한도를 받아 낸 3달 뒤 후지츠카의 조선 보물창고는 미군의 도쿄대공습으로 거의 불타버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 뒤 손재형의 손에서 실업가 손세기에게 넘어갔고, 손세기의 아들 손창근 씨가 대를 이어 소장해오다 일본에서 건너온 지 76년 만에 드디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입니다. 손창근 씨는 원래 2018년 추사 김정희의 걸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포함한 손세기ㆍ손창근 수집품 202건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손창근 선생은 이때 ‘이것 하나만은 섭섭해서 안 되겠다.’라고 빼놓았던 작품이 세한도였는데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라며 내놓아 결국은 국민 품에 안기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