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단정한 차림새의 여인이 앉아 책을 읽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읽는지 손가락으로 글자를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읽는데 책 읽기에 완전히 몰입한 듯 진지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기품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독서삼매경’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조선시대 여성들은 살림하기에 바쁘다거나, 여성들이 무엇하러 책을 읽느냐는 생각에 책과 가까이 하지 않았을 거라 짐작하지만 이 여인을 보면 분명히 책을 읽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 윤덕희, <독서하는 여인>, 비단에 색, 20×14.3cm, 서울대학교박물관
전해지는 그림에 남성이 독서하는 것은 많지만 여성이 독서하는 그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원은 이렇게 여성이 독서하는 그림을 남겨주어 조선시대 여인들도 독서 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구운몽을 쓴 서포 김만중의 어머니 윤 씨는 《시경언해(詩經諺解)》를 비롯하여 홍문관의 많은 책을 아전에게 부탁하여 빌린 뒤에 손수 베껴서 두 아들에게 주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하게 책을 읽었을까요? 심지어 윤 씨는 《소학(小學)》, 《사략(史略)》, 《당률(唐律)》은 손수 아들들에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조선시대 천재화가로 일컬어지는 공재 윤두서(尹斗緖)의 아들 윤덕희(尹德熙, 1685~1776)의 그림입니다. 실제 천재화가 윤두서뿐만이 아니라 아들 윤덕희와 손자 윤용(尹愹)까지 모두 그림 솜씨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심지어 윤두서의 증조할아버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시조에 뛰어나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그 집안은 예능에 참으로 뛰어난 가풍이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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