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 다룰 문법 범주는 ‘높임’과 ‘겸양’이다. 우리말은 높임과 겸양을 위한 표현이 발달되어 있어서 높임과 겸양을 묶어 2회에 걸쳐 설명하기로 한다. 높임과 겸양은 문법 형태나 준문법 형태로 실현되지 않고, 간혹 특수한 어휘로 실현되는 경우도 있어 순수한 문법 범주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어른이 먹는 끼니를 가리켜 ‘진지’라는 높임의 특수 어휘를 사용하거나 윗사람 앞에서 ‘나’ 대신 겸양의 특수 어휘인 ‘저’를 사용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의 문법 범주는 아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론적 엄밀성이 약간 훼손되더라도 학교 문법 수준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여섯째, 높임법은 경어법, 대우법, 존대법, 존경법, 존비법 등 다양한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는 문법 범주로서, 말하는 이가 어떤 대상을 높이거나 낮추는 의도를 나타내는 범주이다. 높임법은 높이거나 낮추는 대상의 종류에 따라 크게 주체 높임, 객체 높임, 상대 높임으로 나뉜다. 차례대로 살펴본다.
(1)과 (2)를 비교해 보면, (1)에서 ‘가’ 대신에 (2)에서 ‘께서’가 쓰였고, (1)에는 없는 ‘-시-’가 (2)에 쓰여 ‘아버지’를 높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주격 조사 ‘께서’가 쓰이거나 선어말 어미 ‘-시-’가 쓰여 문장의 주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높이는 범주를 주체 높임이라 한다. 문장의 주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주체라고 하고, 그 ‘주체’를 높인다는 뜻이다. 주체 높임은 직접 높임과 간접 높임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3)에서 ‘많다’의 주어는 ‘수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염’은 높일 필요는 없으나 ‘할아버지’가 소유한 것이기 때문에 ‘많다’에 ‘-으시-’를 붙인 것이다. (4)에서도 ‘예쁘다’의 주어는 ‘따님’이지만 ‘선생님’의 딸이기 때문에 그 딸이 설령 꼬마라고 하더라도 ‘-시-’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에 소속된 사람이나 사물을 높이는 주체 높임을 간접 높임이라고 한다. 간접 높임이 아닌 일반적인 주체 높임은 직접 높임이다.
(5)는 간접 높임이 과도하게 적용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간접 높임은 높임 대상의 신체 일부, 친족이나 지인, 고정적인 소유물이 주어로 나타났을 때 적용되는데, (5)에서처럼 일시적인 상황에서 높임 대상과 관련된 사물까지 높이는 것은 과도한 간접 높임으로서 전통적 언어 예절에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6)의 화자는 ‘아버지’의 자녀일 것이므로 ‘갔어요’가 아닌 ‘가셨어요’로 쓰는 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인 ‘할아버지’가 ‘아버지’보다 윗사람이므로 그것을 고려하여 ‘-시-’를 쓰지 않은 것이다. 이를 ‘압존(壓尊)’이라고 한다. 존대하는 마음을 눌러 버린다는 뜻이다. 반대로 (7)에서 ‘할머니’에게 ‘엄마’는 아랫사람이므로 ‘-시-’를 쓸 필요가 없을 것이나 듣는 사람인 ‘손주’가 ‘엄마’보다 아랫사람이므로 그것을 고려하여 ‘-시-’를 쓴 것이다. 이를 ‘가존(加尊)’이라고 한다. 존대하는 표현을 덧붙인다는 뜻이다.
(8)에서는 데리고 나가는 대상이 ‘개’이지만 (9)에서는 ‘할머니’이다. (10)에서는 주는 행위를 ‘동생’에게 한 것이지만 (11)에서는 ‘할아버지’에게 한 것이다. 그에 따라 ‘데리다’ 대신에 ‘모시다’를, ‘주다’ 대신에 ‘드리다’를 쓰고 있다. 또한 (10)에서는 부사격 조사 ‘에게’를 쓰고 있으나 (11)에서는 ‘께’를 쓰고 있다. 목적어나 부사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객체라고 하는데, (9)나 (11)에서처럼 목적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높이기 위해 특수 어휘를 쓰거나 부사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높이기 위해 ‘께’ 혹은 특수 어휘를 쓰는 높임 범주를 객체 높임이라고 한다.
글: 이선웅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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