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문법 범주 (6)

튼씩이 2020. 11. 6. 20:19

이번 호는 우리말의 문법 범주 관련 용어를 소개하는 마지막 호이다. 앞 호들에서 다룬 문법 범주는 격, 문장(의) 유형, 시제, 상, 양태, 높임법, 겸양법, 피동, 사동이었다. 오늘 열 번째로 다룰 문법 범주는 ‘부정(否定)’이다.

 

우리말의 부정 표현은 문법 형태소에 의해 실현되는 경우는 없고, 특정 어휘나 준문법 형태인 보조 용언 구성에 의해 실현된다. 부정이 나타난 문장을 부정문이라고 하고, 부정을 문법 범주로 가리키는 용어가 부정법인데, 우리말의 경우 부정이 문법 형태소에 의해 나타나는 경우가 없어서 부정법이라는 용어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긍정문인 (1)에 부사 ‘안’을 사용하여 부정문이 된 것이 (2)이고, 보조 용언 구성인 ‘-지 않-’을 사용하여 부정문이 된 것이 (3)이다. (2)와 같은 부정 표현은 길이가 짧아서 ‘짧은(단형) 부정’이라고 부르고 (3)과 같은 부정 표현은 길이가 길어서 ‘긴(장형) 부정’이라고 부른다. 짧은 부정을 만드는 부사를 ‘부정 부사’라고 한다. (2)와 (3)의 공통점은 부정 표현이 두 단어 이상으로 이루어진 통사적 구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통사적 부정이라고 부른다.

 

 

 

 

(2), (3)과는 달리 (4), (5)에 쓰인 ‘없다’나 ‘아니다’는 그 자체로 부정의 뜻을 담고 있는 어휘이다. 그래서 이러한 부정 표현을 어휘적 부정이라고 부른다.

 

 

 

 

(2)는 ‘아니’의 준말인 ‘안’, (3)에서는 ‘아니하다’의 준말인 ‘않다’가 쓰인 부정문이므로 ‘안 부정문’이라고 한다. 반면 (6)과 (7)은 ‘못’과 ‘못하다’가 쓰인 부정문이므로 ‘못 부정문’이라고 한다. ‘안 부정’은 주로 주체의 의지나 의도를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는 부정 표현을 ‘의지/의도 부정’이라고 한다. 반면 ‘못 부정문’은 주체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상황이 되지 않음을 나타내므로 ‘능력/상황 부정’이라고 한다. ‘안 부정’이 의지/의도 부정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8)은 단순히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문장이므로 주체의 의지나 의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정을 ‘단순/중립 부정’이라고 한다.

 

 

 

 

(9)는 ‘안 부정’도 아니고 ‘못 부정’도 아니다. 이처럼 부정적 명령, 곧 금지의 뜻을 나타낼 때에는 보조 용언 구성인 ‘-지 말다’를 쓰는데, 이를 ‘말다 부정’이라고 한다. ‘말다 부정’은 긴 부정의 형식만 있고 짧은 부정의 형식은 없다.

 

 

 

 

(10)은 어휘적 부정과 통사적 부정이 한 번씩 쓰였고 (11)은 통사적 부정만 두 번 쓰였는데, 아무튼 이처럼 부정 표현이 두 번 쓰인 것을 이중 부정이라고 한다. 이중 부정은 대개 긍정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쓰인다.

 

 

 

 

(12)에 쓰인 ‘결코’는 (13)과 같은 긍정문에서는 쓸 수 없다. 이처럼 부정 표현과만 어울리는 말을 부정 극어라고 한다. ‘극어(極語)’란 ‘극단적으로 그렇게밖에 안 쓰인다’는 뜻을 담은 용어이다. 부정 극어로는 ‘전혀, 하나도, 그다지, 아무도’ 등 꽤 많은 예가 있다. 부정 극어는 부정문 여부를 가리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15)는 의미가 부정적이지만 (14)와는 달리 부정 극어가 쓰일 수 없으므로 대개 부정문으로 보지 않는다.

 

 

 

 

(16)은 부정하는 대상(내용)이 ‘나, 어제, 영호, 만남’이 다 될 수 있는 중의적 문장이다. 부정하는 대상(내용)을 가리켜 ‘부정의 작용역/범위’라고 한다. (16)과 같이 부정의 작용역이 다양하게 파악되는 경우는 흔히 발생한다.

 

 

 

글: 이선웅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