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림(1926~1994)은 1948년에 평양사범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평양서문여자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월남한 극작가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에는 북에서 쓰던 말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위에서 보인 ‘땡돈’이 그러하다. 이 말은 주로 북한과 중국 지역에서 그 쓰임이 발견된다. ‘땡푼’은 우리 국어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남한 지역에서 주로 쓰이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고향인 전북 완주에서도 익숙하게 써 온 말이다. 짐작하겠지만 ‘땡돈, 땡푼’은 ‘아주 적은 돈’, 즉 ‘땡전’과 같은 말이다. 모두 ‘땡’이 쓰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백치 아다다’라는 소설로 유명한 계용묵(1904~1961)은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작가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평안도 사투리가 많이 보인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위에 보인 ‘땅돈’은 주로 중국과 북한 지역의 사투리임을 알 수 있다.
‘땅돈 한 잎’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땅돈’을 세는 단위는 ‘잎’(표준어는 ‘닢’)이다. 그런데 ‘닢’은 주로 동전을 셀 때 쓰는 말이다. 따라서 ‘땅돈’은 지폐가 아니라 동전, 즉 쇠돈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땅’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사전의 뜻풀이를 참고해 보건대, ‘땅돈’의 ‘땅’은 쇠돈(동전)이 무언가에 부딪칠 때 나는 소리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땅’이 변했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소리를 나타내는 ‘땡’을 활용해서 ‘땡돈, 땡푼, 땡전’ 같은 말이 쓰이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로 ‘땡푼’과 같은 뜻의 ‘깽푼’이 쓰인 사례도 발견되는데, 이는 단순히 자음이 교체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북한에서 간행된 《조선말대사전(증보판)》에는 ‘짤락돈’과 ‘짤랑돈’이 새로 실렸다. 여기에도 흉내말 ‘짤락’과 ‘짤랑’이 사용된 것이 눈에 띈다. 두 말 모두 작은 쇠붙이가 흔들리거나 부딪칠 때 나는 소리를 가리키는 말인 것을 보면, ‘아주 작은 돈’이나 ‘동전’을 가리키는 말에는 ‘땅돈, 땡전’부터 ‘짤락돈, 짤랑돈’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조어 방식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짤락’은 ‘짤랑’과 뜻이 비슷한 북한어이다.
오늘 소개한 말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흉내말을 사용하여 그 말맛을 한껏 살린 낱말들이다. 새말이 만들어질 때 이처럼 우리 고유의 말맛을 잘 살린 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 그러고 보니 ‘문콕’, ‘심쿵’ 같은 새말이 있었군.
글: 이길재(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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