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교동도 읍내리에 가면 교동향교 옆에 비석(碑石) 40개가 모여 있는 <읍내리 비석군>이 있습니다. 이 비석들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ㆍ도호부사(都護府使)ㆍ삼도수군통어사(三道水軍統禦使)ㆍ부사 등을 지낸 사람들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를 한곳에 모아놓은 것입니다. 원래는 읍내리 교동양조장 부근 비석거리에 있던 것들인데 1991년에 이곳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 강화군 교동도 읍내리에 있는 <읍내리 비석군>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암행어사,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 공조판서,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박영보(朴永輔)의 ‘휼민선정비’도 있습니다. 실제 어떤 선정비는 벼슬아치들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세워진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만 이 박영보는 조선왕조실록에 54번이나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는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 많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그는 경기감사로 있을 때 부하 벼슬아치가 잘못하자 이에 상관으로서 책임이 있다며, 자신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한 것은 물론 대사헌일 때 임금에게 언로(言路)를 열어 충언을 듣고 검소한 삶을 살아 백성을 사랑할 것을 간언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밖에 40기의 영세불망비 가운데는 경기도수군병마절도사 구성임(具聖任), 경기도수군절도사 이용순(李容純), 경기우도 교동(喬桐) 수군통어사 겸 절도사 정완묵(鄭完黙), 부사 이용순(李容純) 등이 보입니다. 이런 ‘영세불망비’는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나 ’송덕비(頌德碑)‘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런데 경남 창원시 의창구 의창동에는 벼슬아치들의 영세불망비’와는 달리 ‘퇴기백영월영세불망비’도 있습니다. 퇴기 백영월은 생전에 전 재산을 마을에 희사하는 등 이웃에게 나눔과 선행을 베푼 사람이라고 하지요.
▲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박영보(朴永輔)의 휼민선정비 - 왼쪽 / 관찰사 박영보의 휼민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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