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읽기 좋은 글, 듣기 좋은 말 - 눈으로 하는 언어생활

튼씩이 2021. 4. 23. 13:09

옆 차선에서 나란히 달리는 버스의 옆면에 큼지막하게 써진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사랑…. 해 보셨습니까?” 새로 나온 영화를 홍보하는 문구 같다. 단순한 의미인데, 스치는 찰나에도 보는 이에게 여운을 남긴다. 그저 묻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 아픈 사랑을 곁에 앉아 전해 듣는 기분이라 할까? ‘광고주의 성공은 소비자의 실패’란 말을 알면서도 글에다가 큰따옴표까지 써 가며 전하는 메시지에 모든 경계를 풀어 버렸다. 문장 부호의 힘을 그렇게 크게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문장 부호를 잘못 쓰거나 안 써서 문제가 생긴 경험이 있는가? 영어 받아쓰기를 처음 할 때 겪은 일이다. 문장 끝에 마침표를 안 찍어서 애써 외워 쓴 10문제에서 0점을 받았다. 소릿값도 없는 마침표가 점수를 결정하다니! 그렇지만 모국어든 외국어든 문장 부호도 그 언어의 규칙이므로 번거롭다고 하여 이견을 내세울 수 없다. 선생님의 단호한 채점으로 문장 부호도 맞춤법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귀로 하는 언어생활과 말로 하는 언어생활, 두 가지 방식으로 살고 있다. 현대인에게 글을 보는 일은 더 늘었다. 굳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얻고 각종 표지판과 간판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으로 하는 글살이를 잊을 때가 많다. 당연한 듯 쓰고 있는 글자 한 자 한 자는 처음부터 인류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인류가 고안한 발명품이다. 그 글자로 공적 자료를 남기고, 잊으면 안 될 경제 활동도 기록하고 누리소통망에 하루 일과도 기록한다. 사람에게는 ‘눈으로 하는 언어생활’이라는 신세계가 하나 더 있다.

 

 

 

 

“우리 아이가 받아쓰기를 잘 못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특강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다. 받아쓰기의 고민을 들어보면 집집마다 상황이 비슷하다. 아이 말이, 선생님이 ‘감니다’라 해서 ‘감니다’라고 받아썼는데 부르는 대로 쓴 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것이다. 이 말에 학부모들은 말문이 막힌다고 하지만, 그때는 “귀로 듣는 말도 있지만, 눈으로 보는 말도 있다고 아이에게 말해 주세요.”라고 조언한다. 우선 언어생활이 두 가지로 구분된다는 것과, 그러므로 눈으로 보는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 들은 것을 고정된 형태로 바꿔서 적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자는 것이다.

 

글에는 읽을 사람을 전제로 한 약속이 많다. 표기법은 쓰는 사람의 뜻을 잘 전하면서 읽는 사람이 임의대로 해석하는 낭패를 막는 일종의 장치이다. 고대 암각화를 예로 들어보자. 단단한 암벽에 한 자 한 자 새겨 간 사람은 자신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그림을 어느 자리에 넣을지 무척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더 힘든 사람은 그것을 마주하는 이들이다. 표현하려는 쪽과 이해해야 하는 쪽 중에서 소통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이는 누구일까? 남의 생각을 읽어 내야 할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쓴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 내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둘 이상으로 해석될 때 판단할 근거마저 없다면 읽기란 풀리지 않을 숙제가 될 것이다.

 

읽기 좋은 글은 글살이에서 지킬 약속을 지켜 쓴 글이다. 흔히 표기, 맞춤법, 문장 부호 등의 규칙을 따르는 일은 고통으로 기억되기 쉽다. 그러나 표기법은 글쓴이를 제약하는 쇠사슬이 아니라, 글쓴이의 뜻을 명확히 전하는 데 기여할 통로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8’은 ‘eight’라 적는다. 실제 발음 [eit]와 비교해 보면, 소리 때문이 아니라 눈으로 ‘8’이라 알아보는 데 필요한 문자가 들어가 있다. ‘know(알다), knight(기사)’에서 소리 나지 않는 ‘k’를 써야 하는 까닭도 각각 ‘no(아니)’, ‘night(밤)’와 눈으로 구분하기 위해서다. 한자를 쓸 때는 획이나 점 하나도, 그 획을 긋는 방향 하나도 개인이 함부로 할 수 없다. 문자는 인상을 담은 풍경화가 아니며 상상화는 더욱 아니다. 문자가 제 역할을 하려면 단순함이나 편리함보다 더 중요하게 앞세울 것이 많다. 그런 이유로 받아쓰기의 고통은 어디에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마침표까지 꼭꼭 찍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본다. 스페인어 문장 가장 앞에는 맑은 호수에 비친 듯 뒤집혀 그려진 느낌표나 물음표가 먼저 찍힌다. 스페인어 글살이에는 감탄문, 명령문, 의문문에서 ‘!(느낌표)’와 ‘?(물음표)’를 문장의 앞과 뒤에 다 쓰는 규칙이 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필자가 하려는 감탄, 명령, 질문 등을 문두에서부터 독자가 안다면 소통이 더 잘 되지 않겠느냐고 답한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제약으로 보이던 표기법이 표현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쓴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읽을 이를 전제한다. 간판과 상품명도, 식품과 약품에 적힌 유통 기한이나 주의 사항 모두 읽을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용돈을 더 올려 달라는 아이의 손편지, 학교에 게시판에 올리는 누군가의 하소연 등은 더 길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중 어떤 글도 혼자만 알아볼 비밀 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소통에서나 공적 언어생활에서나 똑같이, 독자를 방황하지 않게 배려하며 글 세상의 약속을 지켜 쓰는 것이 좋은 글을 만든다. 읽기 좋은 글은 쓰는 사람의 마음 밭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글: 이미향(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