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603호) 크기가 24m인 <이십공신회맹축> 국보 지정

튼씩이 2021. 5. 20. 07:54

문화재청은 지난 2월 18일 실물과 관련 기록이 완전하게 남아있고 24m에 달하는 큰 규모를 갖춘 조선왕실의 문서인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를 국보 제335호로 지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숙종 6) 8월 30일 열린 왕실의 의식인 ‘회맹제(會盟祭)’를 를 기리기 위해 1694년(숙종 20) 녹훈도감(復勳都監)에서 제작한 왕실 문서지요.

 

 

 

▲ 국보 제335호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전체 24.14m)>-위, 앞부분(가운데), 뒷부분

 

 

 

‘회맹제’는 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내는 행사입니다. 이 의식에는 왕실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이름인 ‘공신(功臣)’ 가운데 개국공신(開國功臣)부터 보사공신(保社功臣, 1680년 4월 경신환국 때 공을 세운 이들에게 내린 칭호)에 이르는 역대 20종의 공신이 된 인물들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임금에게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 회맹제 거행 당시의 회맹문(會盟文) 곧 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과 보사공신을 비롯한 역대 공신들, 그 후손들을 포함해 모두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會盟錄)이 있습니다. 또 종묘에 올리는 축문(祝文)과 제문(祭文)도 기록되었으며, 축의 말미에 제작 사유와 제작 연대를 적었고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국새를 마지막으로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추었지요. 조선 시대에는 공신회맹제가 있을 때마다 어람용 회맹축을 제작했을 테지만, 1910년까지 문헌을 통해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3건에 불과합니다. 그 가운데 이 회맹축은 어람용이자 형식상ㆍ내용상 완전한 형태로 전래된 회맹축이어서 국보로서의 값어치가 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