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605호) 돌 깨는 산울림에 가슴에 금이 간 비둘기

튼씩이 2021. 5. 24. 13:27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 김광섭 시집 《성북동 비둘기》, 범우사(왼쪽) / 시인 김광섭(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 시는 김광섭 시인의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 일부입니다. 1960년대 초반 이 시의 배경이 되는 성북동 산 일대는 막 주택 단지로 개발되던 때였기에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었는데 시는 이 시기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이 파괴되면서 거기에 깃들여 살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도 오갈 데 없이 쫓기는 새가 되고 가슴에 금이 가고 말았지요. 이 시는 삶의 터전인 자연의 품을 잃어버린 아픔을 일상어로 노래했기에 오래도록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광섭 시인은 모교인 중동학교에서 10년 동안 교단에 섰는데, 이때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내선일체ㆍ황국신민화 등을 강요하면서 일본제국주의가 암송을 강요한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일왕이 있는 동쪽을 향하여 절하는 ‘궁성요배(宮城遙拜)’와 ‘일어 전용’에 맞서 학생들에게 겨레의 얼을 심어주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던 시인은 1941년 그는 학생들에게 아일랜드 시를 강의하면서 반일과 민족 사상을 북돋웠다는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3년 8개월의 옥고를 치른 끝에 해방을 맞았는데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지요. 오늘(5월 23일)은 44년 전인 1977년 김광섭 시인이 세상을 뜬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