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쉬운 사람은 없다. 글감을 찾고, 생각을 풀어내는 것을 일상처럼 편안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쓰기라는 행위에는 문법적 부담까지 고스란히 담긴다. 이런 형편을 알기에, 글을 쓴다고 하면 먼저 머리를 감싸고 막막해하는 장면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간혹 쓰기를 외면하는 자기방어 기제가 발동할 때는 정말 난감하다. ‘내가 작가도 아닌데’라거나, ‘나는 글에 소질이 없어’라면서 글쓰기를 일상과 능력의 바깥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물론 하늘이 주신 재능을 발휘하는 훌륭한 문장가도 있다. 그러나 쓰기란 타고나는 영역만은 아니다. 설령 소질이 없다 하더라도 일상생활 중 겪는 많은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글쓰기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다. 새로운 꽃집을 하나 연다고 치자. 가게 앞에 뭐라고 쓸 것인가? 예전에 새로 여는 가게는 대부분 문 앞에 ‘신장개업’이란 상투적인 구절을 붙였다. 으레 아는 말이겠거니 하고 붙였겠지만, 어쩌면 남들도 쓰고 있는 말이라서 그냥 따라 쓴 일이 더 많지 않았을까? 많이 쓰는 말인 ‘신장개업’이 ‘예쁜 꽃 있어요, 우리 집에서 꽃을 사세요’보다 더 안전하고 좋은 표현이라 보장할 수 있는가?
이쯤에서 짚고 갈 것은 주위에서 자주 들리는 말, 남들도 쓰는 말이 모두 좋은 표현은 아니라는 점이다. 살면서 모르고 쓰는 말이 얼마나 많은가? 아는 말은 쓰는 사람도 읽을 사람도 편하게 한다. 자신이 외울 연기 대본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대본이 어려우면 그만큼 외우기가 힘들어 연기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말멋을 살리려다가 말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된다면 손님이 집주인 노릇을 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어려운 말,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말은 그릇된 용례를 재생산한다.
익숙한 예를 보자. 한국인 대부분이 ‘분리수거’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새벽 4시에 쓰레기를 수거하러 나가는지 궁금하다. 또한 쓰레기를 종류대로 나눠 버리는 것이니 사실을 말하자면 ‘분류 배출’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수거하는 관점에서 만든 행정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익숙한 말이라면 그 뜻을 확인하지 않는 자세 탓이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말 중에서도 그런 예가 많다. 예를 들어 리베이트(rebate)란 ‘불법적으로 은밀히 건네주는 돈’으로 통해 왔다. 그런데 그 말의 원뜻은 합법적으로 돈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사는 것을 뜻하는 ‘웰빙(well-being)’은 한국에서는 ‘먹어도 살 안 찌고 영양가 있는 것’으로 쓰였다. ‘골 세리머니’나 ‘바우처’도 한국에서 특수한 의미로 쓰인다. 원뜻과 다르게 변형되어 특정 사회에서만 통하는 말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말, 잘 모르는 말이 소통을 막거나 말실수의 빌미가 되는 사례가 이루 셀 수 없는데 그런 나쁜 경험을 다 같이 겪을 의무는 없다.
어휘든 문장이든 관습적으로 쓰던 말이라면 우선 궁금하게 여겨 보자. 답이 금방 안 보이면 그대로 따르지 말고 자기가 아는 말로 바꿔 보자. 한 예로, 보고서나 수필 등에 ‘반려견은 우리 가족에 있어서, 독도는 한국에 있어서’처럼 ‘에 있어서’가 자주 보인다. ‘에 있어서’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문법이 일본어에는 있는 반면, 한국어에는 없다. 오히려 ‘우리 가족에게, 한국에’와 같이 쓰면 더 자연스럽다. ‘에 있어서’는 한국어 ‘에, 에서, 에게’로 충분히 표현되는 것이다. 모르는 말이나 다수가 쓴다는 말 앞에서 위축되지 말자. ‘회의를 가지려 합니다’를 습관적으로 쓰지만, 회의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니 ‘가지다’와 잘 안 맞는다. ‘회의를 하려 합니다.’면 충분하다. ‘단 맛이 있다.’는 그저 ‘달다’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해야 하는 것’으로 쓰면 더 명확하다.
좋은 글은 아는 내용을 쉬운 말로 쓴 것이다. 글은 자기 얼굴이다. 그렇다면 쓰고 있는 것이 자기 얼굴이 맞는지, 두 가지로 해석되거나 어딘가 걸리는 옹이는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소통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미사여구나 남들도 알아주는 관용 표현 등이 아니라, 누구나 아는 쉬운 말이다. 자신도 모르는 말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는 말을 찾다 보면 나와 남 사이에 소통의 지름길이 놓일 것이다.
글: 이미향(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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