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는 친구하고는 별로 친하지도 않고, 읽어도 뭔 말인지도 잘 모르겠고 해서 아주 멀리 거리를 두고 사는데, 안도현 님의 시 중에서 그냥 마음이 가는 시 두 편을 적어본다.
< 아내의 꿈 >
끝까지 탈퇴각서를 쓰지 않는다면
법대로 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교장의 협박전화를 받고는
아내는 토끼 새끼처럼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지아비가 밥줄 끊어지는 것을
남의 일처럼 보고만 있느냐고
사내 마음은 여자가 어찌 하느냐에 달렸다고
시어머니의 뜨거운 질책에
아내는 소나기로 펑펑 울었습니다
학교 떠나 어디 가서 참교육 하느냐고
더 큰 전진을 위해 일보후퇴하고
다시 앞날을 기약해보아야 한다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 안타까운 설득에
아내는 그날밤 한숨도 자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해고된 뒤에는 남들 보기도
부끄럽다며 바깥 나들이 횟수가 줄고
툭하면 침울해지던 아내였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반찬거리가 떨어지면
짜증 먼저 부리던 아내였습니다
그 아내가 변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한 장 한 장 유인물을 돌리고
가슴에 참교육 배지를 달고 다니고
길거리에서 지지 서명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집회에 참석하여 노래를 배워 부르고
그 가는 손목으로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약하기만 하던 한 여성이
그 아내가 무척 변했습니다
전보다 학교 환경이 부쩍 나아지고
평교사의 봉급이 대폭 오른다고 해도
가르치고 싶은 것을
뜻대로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라면
그런 학교로는 안 돌아가도 좋다고
피땀 흘려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닌
그저 주는 떡이라면 안 먹어도 괜찮다고
지금 비록 궁핍하지만
아내는 무척 넉넉해졌습니다
당신이 부여안고 있는 깃발이
하늘보다 더 푸르고 싱싱하게 휘날릴
그날이 오면
당신을 쫓아낸 사람들의 허물도
그 깃발로 감싸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느새 아내는 나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다시 분필을 드는 그날이 오면
죽어도 교단에서 내려오지 말고
언제까지나 사모님 소리 좀 듣게 해달라고
아내는 상추같이 웃으며 아침 상을 차립니다
< 민석이 백일 지나 밖에 안고 나가니 >
민석이 백일 지나 밖에 안고 나가니
동네 어르신네들 하시는 말씀 있다
그놈 참 잘도 생겼다 장군감이로구나
얼럴 얼럴러 깍꿍
그놈 참 미끈하게도 생겼다 대통령감이로구나
볼기짝 한 대 철썩
그런데 그런 덕담도 어째 내 귀에는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민석아
나는 네가 먼 훗날 제발
장군이나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국을 지키는 일보다
정권의 들러리나 서는 장군이라면
부하에겐 늑대가 되고
상관에겐 쥐새끼가 되는 장군이라면
하늘의 별보다 어깨 위의 별에 눈먼 장군이라면
아직도 반공만이 살 길이라고 믿는 장군이라면
어느 땐가 때가 오면 혼란을 틈타
군복을 벗어던지고 싶어하는 장군이라면
학살을 하고도 피 묻은 손을
태연히 감추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최루탄이 없으면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대통령이라면
세계에서 유례없이 천육백 명이나 되는 교사를
교단에서 몰아낸 대통령이라면
정권 유지 수단으로 통일을 이용하는 대통령이라면
믿어주세요 하고는 금방 국민을 속이는
대통령이라면
그런 장군 그런 대통령 개에게나 주고
민석아 나는 네가 먼 훗날
이런 장군 이런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외국 군대가 우리 땅을 설치고 다니면
분노의 칼을 들어 물리칠 줄 알며
권좌에는 티끌만큼도 욕심 없는 장군 말이다
자본가의 흰 손보다
일하는 사람의 거친 손을 제일 귀하게 여기며
백성을 하늘로 섬기는 대통령 망이다
누구나 그 앞에 무릎 꿇고 싶은 사람 말이다
그날이 와서
민석아 네가 장군이나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싸리빗자루를 들고 그이의 집 마당을 쓰는
사람이 되어도 나는 좋겠다
날마다 펜으로 그이를 찬양하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도 나는 좋겠다
2011. 0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