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서서히 음의 기운이 커지는 24절기 열여섯째 추분(秋分)입니다. 《철종실록》 10년(1859) 9월 6일 기록에 보면 “추분 뒤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를 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여기서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 겨레는 추분에도 더도 덜도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도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 벼가 고개를 숙이는 ‘추분, 중용을 도를 생각하는 하루(그림 이무성 작가)
또 추분 무렵이 되면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입니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벼에서는 향[香]이 우러나고 사람에게서도 내공의 향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간에 들리누나 /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 백곡을 여물게 하고 만물을 재촉하니” 정학유(丁學游)의 ‘농가월령가’ 8월령에 나오는 노래입니다.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낭군의 애(창자)를 끊으려 노래한다는 귀뚜라미의 목소리는 맑지만 처량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의 기운이 성해지는 이때 우리의 마음속에 따뜻한 불을 지펴 훈훈한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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