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세상사는 이야기 164

퍼실리테이터, 이제는 ‘소통지도사’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국민 참여 공론화 토론회가 전국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신고리 5, 6호기 재개 문제부터 대학입시제도 개선, 헌법 개정, 미세먼지 대책, 대구·경북 행정통합, KBS의 공적 책무와 같은 주제들이 정부 부처 공직자들 탁자에서 벗어나 국민이 참여하는 숙의형 정책 토론 마당에 폭넓게 펼쳐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가운데, 몇 해 전만 해도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얼굴을 맞대고 하던 대면 회의는 이제 열기 힘들다. 비대면 화상회의로 전환되면서 회의를 주관하는 주최 측의 고민 또한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은 화상회의에서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을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또는 모더레이..

크루얼티 프리와 동물 학대

뼈를 드러낸 돼지 사체가 굵은 쇠갈고리에 꿰여 흔들거리며 이동하고 있다. 1차로 손질돼 가죽을 잃은 살덩어리는 이미 돼지의 형상을 잃었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생명이 완전히 끊기지 않은 채 발작하듯 고통스럽게 꿈틀대기도 한다. 몇 년 전 케이비에스(KBS)에서 방영한 돼지 가공시설 방송의 한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소비하는 돼지는 약 1,500만 마리,(여기서 ~이다를 붙이든지, 아니면 마침표로 끊어주든지 할 것. 뒷문장과 호응이 되지 않음)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는 닭은 10억 마리, 소 등 다른 육용 동물을 합치면 연간 1억 1천만 마리의 생명이 우리의 밥상을 위해 소비된다. 물론 불법 도축되는 개나 뱀, 곰 같은 동물은 통계에서 빠졌다. 농장의 닭과 돼지, 소는 그들의 오롯한 생명 ..

공공기관에 ‘센터’를 선호하는 숨은 이유가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특별한 기능을 담당할 신규 조직이나 공간을 마련할 때 반드시 해야 할 업무 중 하나가 거기에 해당하는 명칭을 정하는 것이다. 대부분 명칭은 담당 주무관이 자의적으로 짓지 않고 이해가 걸린 주민을 대상으로 공모, 선호도 조사 등 공개 과정과 최종 결재권자의 낙점을 거쳐 결정된다. 그래야 주민, 의회 의원 등이 “명칭을 왜 그렇게 지었느냐?”라고 따지더라도 ‘주민 여론을 수렴한 결과’임을 들어 비난이나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주민 공모, 선호도 수렴을 거친 결과를 보면 우연이겠지만 이상하게 ‘센터’가 많이 선정된다. 자원봉사센터, 데이케어센터, 장애인복지센터, 모자보호센터, 위기가정구호센터, 청소년자치센터 등등이 모두 그렇다. 조직이 방대하지 않고, 비교적 단순한 기능을 담당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느 주말 지방에 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입석으로 서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뿐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다. 어르신들은 차표를 예매하는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하거나 온라인으로 결제하는 방법을 잘 모르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부르는 앱을 사용할 줄 몰라서 길 한복판에서 한없이 예약 표시등이 켜져 있는 택시들을 지나쳐 보내고 망연자실하거나, 급기야 외출이 두렵다고 주변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도 했다. 엊그제 과메기를 드시고 싶다는 아버지 말씀에 어머니께서 불편한 다리로 과메기를 사러 대형 슈퍼마켓에 다녀오셨다기에, 놀라서 다음날 바로 인터넷으로 새벽 배송되는 과메기를 친정집 문 앞으로 보내드렸다. 쉰 살이 넘으면서 드는 생각은 두려움이 커진다는 것이다..

‘홈페이지’에서 ‘누리집’으로 바뀌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언어 순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언어자유주의자 지식인들의 생각과 달리 말은 바뀌고 있다. ‘네티즌’이 ‘누리꾼’으로 바뀌는 추세는 매우 확고해졌고, 최근에는 ‘홈페이지, 웹사이트’가 ‘누리집’으로 바뀌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리집’이라고 말하면서 그 주소를 알려주려면 나도 약간 손끝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방송이든 코로나 예방접종 예약을 하거나 정보를 확인하려면 ‘코로나19 예방접종 누리집’으로 가라고 안내한다. 소상공인 방역지원금을 신청할 때도 “안내 문자를 받은 소상공인은 전용 누리집인 ‘소상공인방역지원금’에서 신청할 수 있다.”고 방송마다 말한다. 내 기억으로 네티즌이 누리꾼으로 바뀌는 데에는 아나운서 한 분의 선도적인 실천이 큰..

대선 ‘슈퍼위크’가 밝았다고?

2022년 3월의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예비 주자들의 대선 출마 선언이 잇따르면서 대선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와이티엔을 비롯한 언론들은 대선 주자들의 행보나 일정, 이들의 정책 공방을 코로나19 관련 속보와 함께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정치부 뉴스를 검색해 보면 언론들은 지난 6월 마지막 주를 이렇게 규정한다. 대선 슈퍼위크. “대선 슈퍼위크가 시작됐습니다.” “대선 주자들 총출동, 슈퍼위크 밝았다.” 실제로 6월 마지막 주에 대선 정국이 크게 출렁거렸다. 여당은 예비후보 등록 시작과 함께 일부 후보들이 단일화를 발표했고, 야권에서도 대선 출사표를 던지거나 현직을 사퇴하며 정계 진출을 준비하는 등 분주한 일정이 이어졌다. (물론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어떤 주도 ‘슈퍼위..

범람하는 일본식 영어, 공공기관과 언론의 책임이 막중하다

'일본식 영어’를 널리 ‘보급’하고 있는 사람들 최근 연합뉴스의 이른바 ‘기사형 광고’ 문제가 자못 큰 화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위원장은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뉴스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합의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과연 ‘니즈’란 영어가 꼭 필요했을까? 더구나 이 ‘니즈’란 말은 잘못 사용되고 있는 일본식 영어다. 저명한 어느 교수가 쓴 글이 “‘핀셋 정책’으로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려고 했으니 참으로 나이브하기 짝이 없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로 끝이 난다. ‘핀셋’도 ‘나이브’도 모두 일본식 영어다. 특히 글 결론부에 ‘나이브’란 말이 나오니 글 전체의 무게가 갑자기 떨어지는 느낌이다. 또 언론사 논설위원 출신의 칼럼에서는 ‘메리트..

키오스크가 뭐예요?

눈을 뜨면 새로운 기계가 나타나는 세상이다. 전자 장비가 발달하면서 사람을 대신하여 일하는 기계가 더욱 늘었다. 기차역이나 식당, 전시장 등지에 사람인 양 이용자를 맞이하는 기계가 있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 표를 사거나 주문하는 이것을 흔히 키오스크(kiosk)라고 부른다. 최신 장비는 아니나 전염병의 확산세 가운데 비대면 접촉이 선호되면서 사용량이 급성장한 기기 중 하나이다. 그림 1. 대면 접촉을 줄이기 위해 활용하는 키오스크. 주로 무인 ○○기로 바꿔쓸 수 있다. 우리는 키오스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을 이르는 말인지, 어디에서 온 말인지는 잘 생각해 보지 않는다. 여러 사전을 찾아보면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정보 단말기’라고 공통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터치스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