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368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이중생활도, 두 집 살림도 아닌 두 지역살이

1990년대에 유럽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 국내에 개봉됐다. 이렌 자코브가 주연한 이 영화는 두 개의 도시에 떨어져 살며 만나 본 적도 없는 두 여성이 같은 이름과 얼굴로, 서로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의식하고 감정을 공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원제 중 ‘더블 라이프’(Double Life)를 한국어로 ‘이중생활’이라 번역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 사전상 뜻은 맞되 말의 사회적 쓰임이라는 맥락에서 봤을 때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말모임에서 검토한 것은 ‘더블 라이프’가 아닌 ‘듀얼 라이프’(dual life)였다. 역시 오해를 주기 십상인 용어다. 영어 사전에서 이 용어를 찾아보면 ‘이중생활’이라고 번역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중생활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이상의 직업 혹은 역..

‘멀티데믹’은 ‘감염병 복합 유행’으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 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장소원, 이하 국어원)은 ‘멀티데믹’을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감염병 복합 유행’을 선정했다. ‘감염병 복합 유행’은 여러 가지 감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문체부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하나로 국어원과 함께 외국어 새말 대체어 제공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문체부와 국어원은 지난 10월 19일(수)에 열린 새말모임*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미의 적절성과 활용성 등을 다각으로 검토해 ‘멀티데믹’의 대체어로 ‘감염병 복합 유행’을 선정했다. * 새말모임: 어려운 외래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다듬은 말을 제공하기 위해 국어 유관 분야 전문가로 구성한 위원회. 이에 대해 문체부는 1..

'멍멍이'에서 '댕댕이'로, 왜?

최근 국립국어원에서 한글날을 앞두고 모양이 비슷한 글자들을 서로 바꾸어 쓰는 신조어, 일명 ‘야민정음’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댓글 행사를 기획했으나, 누리꾼들의 반발로 행사를 취소한 일이 있었다. 올바른 한글 사용 문화를 선도해야 하는 국립국어원에서 표준어가 아닌 인터넷 게시판발 유행어를 소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반대 측의 주된 의견이었다. ‘야민정음’은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라는 극우 게시판에서 사용하기 시작해 퍼진 것으로, 그 이름 또한 게시판 제목에서 글자를 따와 훈민정음과 합성하여 만든 것이다. 각종 혐오 발언을 일삼아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받는 집단에서 탄생한 속어를 대중 일반에서 탄생한 문화의 정식 명칭인 듯 공식 기관에서 그대로 소개하는 것은 자칫 그들의 다른 부정적인 언..

국어로 바라보기/뭐라고 부를까? - '고객님'이라 부를 수 없는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장에 방문했을 때 우리는 종종 ‘고객님’으로 불린다. 종업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부르는 ‘고객님’에 흐뭇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고객님’에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가 숨어 있다. ‘-님’의 정체 우리는 일상에서 존중이나 높임의 뜻을 담아 ‘고모님’, ‘사장님’처럼 ‘-님’을 붙여 말하곤 한다. 그러니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을 ‘고객님’이라 부르는 것도 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우선 ‘고객’부터 파헤쳐 보자. ‘고객’은 한자 ‘돌아볼 고(顧)’와 ‘손님 객(客)’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상점 따위에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 ‘단골로 오는 손님’을 뜻한다. 따라서 손님에게 ‘고객’을 쓰는 데에는 무리가 없지만 ‘-님’에서 문제가 생..

예능 속 우리말 게임을 보며 마냥 웃을 수 없던 이유

△티비엔(tvN) 예능방송 ‘지구오락실’의 한 장면 7월 국내의 한 케이블 예능 방송(지구오락실)에서 출연진들이 우리말만을 사용하는 게임을 즐겼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음식점에서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하면 된다. 한 번이라도 규칙을 어기면 음식을 못 먹고 다른 식당으로 이동해야 한다. 게임이 시작되자 출연진들은 외국어를 쓰지 않으려고 진땀을 흘렸다. 이들의 말투는 마치 번역기 목소리를 흉내 낸 듯 어색했고 부자연스러웠다. 대체어를 찾으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끝내 출연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습관처럼 ‘오케이(OK)’, ‘사이즈(size)’ 등의 영어를 내뱉고는 게임에서 지고 말았다. 그러고는 게임이 너무 어렵다고 고백했다. 방송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