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명부 3

(얼레빗 제4720호) 명안공주에게 한글편지로 사랑을 준 현종

“새집에 가서 잠이나 잘 잤느냐. 병풍을 보내니 몸조리 잘하고 밥에 나물을 넣어 먹어라. 섭섭 무료하기 가이없어 하노라.” 이는 현종임금이 사랑하는 고명딸 명안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입니다. 조선시대는 대부분 공식 문자 생활이 한문으로 이루어졌음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그런 만큼 당시에는 언문(한글)이 푸대접받았을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궁궐 안 대비, 중전을 비롯한 내명부는 물론 임금까지 언문을 썼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많습니다. ▲ 현종임금이 막내딸 명안공주에게 보낸 한글편지 특히 현종에게는 외아들 숙종과 명선ㆍ명혜ㆍ명안의 세 공주가 있었는데 명선ㆍ명혜 공주가 일찍 죽는 바람에 아버지 현종과 어머니 명성왕후(비슷한 이름으로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와 다름)는 유달리 명안공주를 아끼고 사..

(얼레빗 4449호) 선조, 인원왕후 언문(한글)으로 교지를 쓰다

조선은 대부분 공식 문자 생활이 한문으로 이루어졌음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그런 만큼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지만 이후 언문(한글)이 푸대접받았을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궁궐 내 대비, 중전을 비롯한 내명부에서는 언문으로 교지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 역대 임금 가운데 선조는 심지어 공식 문서인 교지에도 언문을 썼습니다. 선조가 교지를 언문으로 쓴 까닭은 무엇일까요? 《선조실록》 25년(1592년) 8월 19일 기록을 보면 “언서(諺書)로 방문(榜文, 길거리나 많이 모이는 곳에 써 붙이는 글)을 많이 써서 송언신에게 보내어 백성을 알아듣도록 하라.”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한문이 아닌 언서(한글)로 교지를 내린 까닭은 백성과 원활한 의사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