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상관 5

(얼레빗 제4875호) 2품을 지내지 않았으면 쌍교를 못 탄다

"교자(轎子) 타는 금법(禁法)을 거듭 밝히어 당상(堂上) 수령으로 2품과 승지를 지내지 않은 자는 쌍교(雙轎)를 타지 못하게 하고, 당하(堂下) 수령은 지붕의 있고 없음은 물론, 가마를 모두 금하소서. (가운데 줄임) 이후부터 관찰사가 일일이 적발하여 임금에게 글로 올리게 하고, 찰방(察訪, 역참(驛站) 일을 맡아보던 벼슬)이 발각하지 않으면 역마(驛馬)를 빌려준 죄로 벌하소서." ▲ 평교자(平轎子), 예천박물관 소장 이는 《숙종실록》 숙종 37년(1711년) 11월 2일 기록으로 ‘교자(轎子)’란 조선시대 종일품 이상의 벼슬아치와 기로소의 당상관이 타는 가마를 이르던 말입니다. 특히 말 2필(匹)이 끌고 가는 가마(駕馬) 곧 쌍교(雙轎)를 아무나 타는 일이 잦자 조선 중ㆍ후기 의정부를 대신하여 국정 ..

(얼레빗 제4740호) 임금도 함부로 부르지 못할 신하 “불소지신”

조선시대 때 세자를 가르친 것은 나중에 임금을 만들기 위한 영재교육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자를 가르치기 위한 별도의 기관을 두었지요. 물론 태조 때에는 그저 ‘세자관속(世子官屬)’이라 하여 관리만 두었는데 세조 때 드디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을 설립하였습니다. 시강원 설립 목적은 유학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임금인 세자에게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적 지식과 도덕적 자질을 기르기 위함이었지요. 이때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관들은 모두 당대의 실력자들이 임명되었습니다. 세자의 사부는 물론 가장 고위직인 영의정과 좌, 우의정이 맡았지요. 하지만, 이들은 나랏일로 바빴기 때문에 실제로 세자를 가르치는 사람은 빈객(賓客) 이하의 전임관료들이었는데 주로 문과 출신의 30~40대의 참상관(參上官, 정3품에서 종6품 ..

세자의 대리청정 (1)

세자의 대리청정 김문식 (단국대) 1. 왕위 계승을 공식화하는 의식 국왕은 자신의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인 왕세자, 왕세손, 왕세제를 생전에 지정해 두었다. 이들은 국왕의 아들, 손자, 동생 가운데 한 사람이 선발되었고, 국왕이 주재하는 책봉식을 통해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로 공인을 받았다. 국왕의 후계자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사람은 왕세자였다. 왕세자와 관련된 의식에는 왕세자 책봉식, 왕세자가 성균관에 가서 교육을 받는 입학식,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 국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돌보는 대리청정이 있었다. 다음의 는 왕세자들이 책봉, 입학, 관례, 가례(혼인), 대리청정을 한 나이를 정리한 것이다. 이를 보면, 왕세자들은 대부분 10세를 전후하여 책봉, 입학, 관례를 연속적으로 거행했다. 대리청정을 하는 ..

임금도 함부로 부르지 못한 신하, 불소지신

임금도 함부로 부르지 못한 신하, 불소지신 조선시대 세자는 나중에 임금이 되기 위한 영재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세자를 가르치기 위한 별도의 기관을 두었지요. 태조 때에는 그저 ‘세자관속(世子官屬)’이라 하여 관리만 두었는데, 세조 때 드디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을 설립했습니다. 유학 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임금인 세자가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적 지식과 도덕적 자질을 기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이때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관은 모두 당대의 실력자가 임명되었습니다. 세자의 스승은 가장 고위직인 영의정과 좌·우의정이 맡았지요. 하지만 이들은 나랏일로 바빴기 때문에 실제로 세자를 가르치는 사람은 빈객(賓客) 이하 전임관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문과 출신 30~40대 참상관(參上官, 정3품에서 ..

(얼레빗 4398호) 임금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신하 '불소지신'

조선시대 세자를 가르친 것은 나중에 임금을 만들기 위한 영재교육이었기에 세자를 가르치기 위한 별도의 기관을 두었습니다. 태조 때에는 그저 ‘세자관속(世子官屬)’이라 하여 관리만 두었는데 세조 때 드디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을 설립하였습니다. 시강원 설립 목적은 유학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임금인 세자에게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적 지식과 도덕적 자질을 기르기 위함이었지요. ▲ ‘세자시강원’에 걸어두었던 편액으로 효명세자의 예필(국립고궁박물관) 이때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관들은 모두 당대의 실력자들이 임명되었습니다. 세자의 사부는 물론 가장 고위직인 영의정과 좌ㆍ우의정이 맡았지요. 하지만, 이들은 나랏일로 바빴기 때문에 실제로 세자를 가르치는 사람은 빈객(賓客) 등 전임관료들이었는데 주로 문과 출신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