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4

(얼레빗 4671호) 고려 창왕 때부터 교류했던 유구국(오키나와)

“유구국(琉球國, 류쿠국)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가깝다. 어떤 사람은 맑은 날이면 한라산에 올라 유구의 산빛을 볼 수 있다 하였다. 그렇게까지 가깝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 정남쪽 바다 한가운데에 있고, 달리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없는 땅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왕래하는 일이 없다가 고려말 창왕(昌王) 원년(1389년)에 이르러 경상도 원수 박위에게 대마도를 공격하게 하자 유구의 중산왕 찰도가 소식을 듣고 신하 옥지를 보내 표문을 올리고 신하를 자칭하였다.” ▲ 정동유 《주영편(晝永編)》, 안대희ㆍ서한석 뒤침, 휴머니스트 위는 조선의 실학자 정동유가 조선의 역사문화와 자연환경, 풍속과 언어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고증하고 분석하여 백과사전처럼 엮은 책 《주영편(晝永編)》에 나오는 유구국 곧 지금의 오키나와에 ..

(얼레빗 4660호) 조선 초기 목숨을 건 체탐인의 활약

평안도 연변(沿邊) 각 고을 구자(口子, 소규모 초소)의 적변을 정탐하는 사람은, 한 군데마다 열 명을 정원으로 하여, 평상시에는 2교대로 나누어 근무하고, 변고가 생기면 번을 합해서 운영합니다. (가운데, 줄임) 그 근무자 가운데 정탐꾼이 4백 9명인데...“ 이는 《세종실록》 28년(1446년) 1월 4일의 기록으로 여기서 말하는 정탐꾼 곧 체탐인(體探人)은 요즘 말로 하면 첩보원으로 조선 초 세종대왕 때 주로 활약했습니다. 그 까닭은 조선 건국 초기 북방 영토를 확정 짓는 과정에서 고려 이래 현지의 토착세력이었던 여진족이 수시로 변경을 넘어와 약탈과 납치를 일삼았고, 이에 조선은 곳곳에 성과 목책을 쌓고 방어에 치중하는 것은 물론 수시로 체탐인(體探人)을 파견하여 여진족의 거주지나 세력에 대한 정보..

(얼레빗 4469호) 조선시대 소나무는 왜구의 표적이었다

"신이 옛날 대마도를 정벌한 뒤, 왜선을 추격하여 전라도 연해변 섬을 돌아보니 거기는 소나무가 무성하나 뭍(육지)과 거리가 멀어서 왜구들이 매양 배를 만들기 위해 오는 것이니, 염려할 것은 없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대마도에 배를 만들 만한 재목이 없으므로 반드시 전라도 섬에 와서 배를 만들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세종실록》 3년(1421) 8월 24일 기록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기록을 보면 왜구들이 조선 바닷가를 침범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배를 만들기 위한 소나무를 구하기 위함이지요. 이때 보고를 했던 이순몽은 “바닷가에 있는 소나무를 모조리 베어 왜선이 오지 않도록 함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했지만, 세종임금은 "어찌 다 벨 것이 있겠는가?"라며 들어주지 않습니다. 대신 병선을 가지고 들어..

9월 4일 - 배고프던 시절 구황식물로 목숨을 연명했지요

지금 고구마는 간식으로 즐겨 먹지만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이었습니다. 이 고구마의 어원은 어디서 왔을까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엄의 《해사일기(海槎日記)》라는 책에는 “대마도에는 ‘감저’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일본 한자어로 효자마(孝子麻)라고 하며, 그 발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