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 15

3월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도운 호주 독립운동가

국가보훈부는 일제강점기, 부산진일신여학교(이하 ‘일신여학교’)의 3・1운동을 도운 호주 선교사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2022년 애족장), 이사벨라 멘지스(2022년 건국포장), 데이지 호킹(2022년 건국포장)을 로 뽑았다. 1919년 서울에서 인쇄된 독립선언서가 부산ㆍ마산 지역에 전달되었으며, 서울에서 내려온 학생대표들은 부산 학생대표들을 만나 만세 시위를 촉구했다. 이에 따라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3월 11일 저녁,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펼쳤다. ▲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이사벨라 멘지스, 데이지 호킹(독립기념관 - 왼쪽부터) 호주 빅토리아주 출생(1887년)의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는 1910년 호주 선교사로 부산에 파견, 일신여학교 교무주임을 지..

아우내 만세운동 주역 처음 밝힌 ‘김구응 열사 평전’

“나는 오래전 4·1아우내 만세운동의 현장이었던 아우내(병천, 竝川)에 수년 동안 머무르면서 유관순 열사의 기념관과 생가, 열사를 기념하는 공원을 나의 산책 코스로 정하고 거의 날마다 그곳을 거닐었다. 그러면서 나는 유관순 열사의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는 《김구응 열사 평전》(틈새의 시간 출간)을 쓴 전해주 성공회 신부의 말이다. 전해주 신부는 충남 아우내(병천) 성공회교회에서 사제로 지내면서 뜻밖에 ‘4·1아우내 만세운동’의 주역이 유관순 열사(이화학당 유학생, 당시 17살)가 아닌 당시 지역 유지이자 아우내에 첫 근대식 학교인 청신의숙(靑新義塾)을 세우고 더 나아가 성공회에서 운영하던 진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구응 열사(당시 32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김구..

3‧1절 제104돌 <우리는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

3·1절 제104돌을 앞두고, 1919년 나라 안팎에 선언한 독립선언서를 통해 3·1만세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열들의 독립운동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ㆍ체험행사가 열린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3·1절 제104돌을 맞아 오는 21일(화)부터 3월 12일(일)까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서울 서대문구) 1층 특별전시실에서 1919년 당시 발표된 독립선언서 4종과 이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전시ㆍ체험행사를 연다”라고 밝혔다. ‘우리는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는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의 지향점을 알리는 여러 종류의 독립선언서를 통해 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생각했던 독립의 의미와 방향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당시의 독립선언에 대한 가독성을 높이고 ..

(얼레빗 제4794호) 3.1만세운동의 도화선, 도쿄 2.8독립선언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은 우리 이천만 겨레를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위는 3.1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도쿄 2.8독립선언서의 일부분입니다. 1910년 조선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한일강제병합"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로부터 9년 뒤 도쿄에 유학하고 있던 조선청년들은 조국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1919년 1월 도쿄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한 뒤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와 를 만들었습니다. ▲ 2.8독립선언서 전문(재일본 한국YMCA 제공) 그리고 2월 8일 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공사관과 일본정부, 일본국회 등에 발송한 다음 기독교청년회관에서 ..

(얼레빗 4706호) 독립선언서를 쓴 소설가 <삼대>의 염상섭

“평화의 제단에 숭고한 희생으로서 바친 3천만의 망령에 의하여 가장 웅변으로 또 가장 통철히 오인(吾人)에게 가르쳐 준 것은 실로 민족자결주의란 오직 한마디다. 일본은 입을 모아 조선을 혹은 동족(同族)이라 말하고 동조(同祖)라 역설한다. (가운데 줄임) 우리 한국은 4천 3백 년이란 존엄한 역사가 있는데 일본은 한국에 뒤지기가 실로 3천여 년이다. 이를 봐도 조선민족은 야마토(大和)민족과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것을 췌언(贅言, 장황하게 말하다)할 필요도 없는데 합병 이래 이미 1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일본은 조선에 임(臨)함에 얼마나 참학(慘虐)과 무도(無道)를 극(極)하였던가.(뒷줄임)” -재 오사카 한국노동자 일동 대표 염상섭- 이는 소설가 염상섭(1897~1963)이 쓴 가운데 일부입니다. 염상섭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을 기린다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도쿄)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한국인 유학생 600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결의문을 배포한 ‘2·8독립선언’의 고귀한 업적과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 2.8 독립선언서 전문(재일본 한국YMCA 제공)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 103주년 기념식’이 오는 8일(화) 오전 11시, 일본 도쿄 재일본한국와이엠시에이(YMCA) 한국문화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기념식은 재일본한국와이엠시에이(이사장 정순엽) 주관으로 열리며, 독립유공자 후손, 재일단체 관계자, 유학생 대표, 교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다. 이번 행사는 국민의례, 기념사, 성경봉독, 2‧8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되며, 온라인..

육당 최남선과 언행일치

우리나라 근대사는 일제강점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 시절을 풍미했던 사람 중에 육당 최남선이 있습니다. 그는 천재적인 언론인, 시인, 역사가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지요. 《소년》이란 잡지를 창건하고 독립선언서를 집필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하나였고 청년 시절 민족혼을 드높이고자 무던히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년에 일제에 협조하면서 친일 행적을 남기게 됩니다.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여 일제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할 때 일조를 했던 사람이고 조선 유학생을 학병으로 나가게 하려고 강연을 하였는가 하면 일제의 침략 정책에 앞장서 온 변절자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당연히 친일은 청산되어야 하고 독립운동가는 대우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의 준엄한 판단이지요. 수많은 사람이 일제에 협조하고 앞잡이..

(얼레빗 4530호) 3.1만세운동 도화선이 된 도쿄 2.8독립선언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은 우리 이천만 겨레를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위는 3.1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도쿄 2.8독립선언서의 일부분입니다. 1910년 조선은 일제의 강압으로 “한일강제병합"을 당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이로부터 9년 뒤 도쿄에 유학하고 있던 조선 청년들은 조국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1919년 1월 도쿄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한 뒤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와 를 만들었습니다. ▲ 2.8 독립선언서 전문(재일본 한국YMCA 제공) 그리고 2월 8일 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공사관과 일본 정부, 일본 국회 등에 보낸 다음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얼레빗 4342호) 논개의 붉은 마음과 수주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 종교보다도 깊고 / 불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하다 /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 높게 흔들리우며 /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 '죽음'을 입맞추었네! /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