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 5

(얼레빗 제5022호) 119년 전 친일단체 일진회가 발표한 선언서

“~ 외국에 공사를 파견하여 국가 대표로 삼는 것은 국가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것인데, 그 이름과 지위가 허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 무릇 얼마인가, 차라리 우방 정부에 위임하여 그 힘에 의거하여 국권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 또한 폐하의 대권이 발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운데 줄임) 수백 명 사상자를 내면서도 기필코 적은 공이나마 세워 동맹국에게 신의를 표하려 했던 계책이었다.” ▲ 일진회가 1907년 일본 황태자의 조선 방문 때 남대문 앞에 세운 대형 홍예문(아치). '받들어 맞이한다.'라는 뜻의 '봉영(奉迎)'이라는 글씨와 함께 가운데에 일본왕실을 상징하는 사꾸라 무늬가 있다. 이는 119년 전인 1905년 내일(11월 6일) 친일 단체였던 일진회가 발표한 선언서입니다. 내용은 “일본의 지도를..

(얼레빗 제4768호) 이완용에게 을사늑약을 종용했던 이인직

106년 전(1916년) 오늘은 소설가 이인직(李人稙, 1862∼1916)이 죽은 날입니다. 우리는 학창시절 이인직이 《혈(血)의 누(淚, 1906)》, 《귀(鬼)의 성(聲, 1908)》, 《치악산(雉岳山, 1908)》, 《은세계(銀世界, 1913)》 따위 신소설을 쓴 작가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특히, 《혈(血)의 누(淚)》는 첫 장편소설로서 본격적인 신소설의 효시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배워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 소설가 이인직(李人稙, 1862∼1916)과 이인직의 신소설 《혈(血)의 누(淚)》 재판 표지(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그러나 이윤옥 시인의 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2011》에 따르면 《혈(血)의 누(淚)》 작가 이인직이 일본 유학시절 스승인 미도리 교수에게 찾아가서 ..

(얼레빗 4635호) 고종에게 일본에 사죄하라 협박한 송병준

1907년 고종황제가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여 을사조약과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호소한 직후인 그해 7월 6일 매국노 가운데 이완용과 쌍벽을 이루는 송병준은 고종에게 양위를 종용합니다. “헤이그 밀사 사건은 그 책임이 폐하에게 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친히 도쿄에 가서 일본의 천황에게 사죄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세가와 주둔군 사령관을 대한문 앞에 맞아 면박(面縛, 양손을 등 뒤로 돌려 묶고 얼굴을 쳐들게 하여 사람에게 보임)의 예를 하십시오.”라고 협박했습니다. ▲ 사헌부 감찰시절의 송병준(출처 위키백과) 고종은 송병준에게 “경은 누구의 신하이냐”라고 책망했지만 이후 이완용과 송병준이 날마다 고종에게 독촉했고, 송병준이 만든 친일단체 일진회가 나서서 온 나라에서 ..

(얼레빗 4123호) 매국노들에 의한 고종황제 강제 퇴위

한국문화편지 4123호 (2019년 07월 17일 발행) 매국노들에 의한 고종황제 강제 퇴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2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07년 7월 16일 매국노들이 주도한 내각회의에서 마침내 황제 폐위가 결정되었고, 이를 안 고종은 ‘짐은 죽어도 양위할 수 없다.’고 거절하면서 버텼..

11월 18일 - 끝까지 조선을 지키려던 한규설을 가두다

1905년 11월 17일 오후 을사늑약이 강행된 덕수궁 앞과 회의장 안은 완전무장한 일본군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기병 800명, 포병 5,000명, 보병 2만 명이 서울 시내 전역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하지요. ≪한말외교비화≫(1930)에 따르면 '슬피 부르짖는' 참정대신 한규설이 별실로 끌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