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보 10

민족지의 신화 - 채백

힘을 가진 자가 자신의 모습을 어떤 방식으로 미화시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어린 시절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삭제 사건을 배우면서 또는 일제 탄압에 맞서 싸워온 사례들을 들으면서, 지금은 변절했지만 그래도 창간 초기와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지로서 국민들의 가슴에 자긍심을 갖게 해 준 신문이라 알아왔었던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린 책이다.3.1운동 독립선언서 작성 33인 중 한용운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변절할 수 밖에 없었던 어려운 시절이라 이해해 줄 수도 있지만, 자기 반성은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을 미화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에 언론이 그래도 되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시절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일제에 빌붙어 온갖 ..

(얼레빗 제4987호) 80년 전 일제 여자정신대근로령 공포

라는 기사가 매일신보 80년 전 오늘(1944년 8월 23일) 보도되었습니다. 기사 내용에는 “우리는 즐겁게 노래하며 열심히 일하자. 2,600만의 합창!(合唱) 결전 증산장에서 명랑하고 힘차게 부를 노래 두 편을 조선연맹이 보낸다.”라는 내용입니다. 일제가 전쟁 막바지에 한 발표는 그럴듯했지만, 실제는 12살에서 40살까지의 여성들을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부대’에 징발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원래는 노동력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수시로 소요 인원을 파악해 영장을 내주면 이를 받은 여성은 의무적으로 1년 동안 근로 동원에 응해야 했습니다. 이를 피하려고 조선에선 조혼(早婚) 바람이 불었고, 주로 가난한 집 여성들은 간호사ㆍ여공 모집이라는 취업 사기에 속아 넘어가거나 유괴ㆍ강제 연행 방식으로 끌려갔습니다. ..

우리나라 일본을 지키랍시는 황송합신 뜻받어, 이광수, <지원병장행가>

지원병장행가                          - 이광수(가야마 미츠로)      만세 불러 그대를 보내는 이날     임금님의 군사로 떠나가는 길     우리나라 일본을 지키랍시는     황송합신 뜻받어 가는 지원병  ▲ 1940년 매일신보에 실린 이광수의 창씨개명을 권고하는 논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1892~1950) 하면 ‘191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로 표현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광수는 〈무정〉을 1917년 1월 1일부터 “매일신보”에 126회에 걸쳐 연재하여 청년층과 지식인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다음 해 1918년 단행본으로 펴내 1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무정의 성공으로 당시 문인으로서 그의 인기는 단연 으뜸이었고 육당 최남선, 벽..

(얼레빗 제4924호) 삿ᄲᅩ로ㆍ아사히 맥주가 국산?

1915년 5월 4일 자 매일신보에는 국산 맥주광고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삿ᄲᅩ로 맥주와 아사히 맥주로 일제였지만, 일본과 조선을 하나로 하여 국산(國産)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933년 5월 6일 자 동아일보에는 조선과 일본을 똑같이 짙은 색으로 표시하여 조선은 일본의 영토임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광고는 “동양의 맹주 일본! 동양의 명주 사쿠라”라고 광고문구를 썼고 이는 결국 사쿠라 맥주를 마시면서 조선은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흉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 1915년 5월 4일 자 매일신보에 ‘국산’으로 둔갑하여 실린 삿ᄲᅩ로ㆍ아사히 맥주광고 이러한 광고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조선으로 들여오면서 삽화나 광고문구를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조선에서 ..

3월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도운 호주 독립운동가

국가보훈부는 일제강점기, 부산진일신여학교(이하 ‘일신여학교’)의 3・1운동을 도운 호주 선교사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2022년 애족장), 이사벨라 멘지스(2022년 건국포장), 데이지 호킹(2022년 건국포장)을 로 뽑았다. 1919년 서울에서 인쇄된 독립선언서가 부산ㆍ마산 지역에 전달되었으며, 서울에서 내려온 학생대표들은 부산 학생대표들을 만나 만세 시위를 촉구했다. 이에 따라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3월 11일 저녁,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펼쳤다. ▲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이사벨라 멘지스, 데이지 호킹(독립기념관 - 왼쪽부터) 호주 빅토리아주 출생(1887년)의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는 1910년 호주 선교사로 부산에 파견, 일신여학교 교무주임을 지..

(얼레빗 4694호)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최수봉 열사

1920년 7월 29일 동아ㆍ조선ㆍ매일 3개 신문은 일제히 호외를 내고 ‘밀양폭탄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 보도했습니다. 바로 이틀 전인 12월 27일 아침 9시 40분 무렵, 경남 밀양경찰서에 최수봉 열사가 폭탄을 던진 사건에 관한 기사입니다. 물론 이때 던진 두 발의 폭탄은 위력이 약하여 순사부장에게 타박상을 입혔을 뿐 큰 타격을 주지 못했지만, 이날 의거는 영남 일대의 항일 민심을 다시금 격동시켰고, 전투적 독립운동 진영을 고무시킨 것은 물론, 일제 경찰은 언제 또 그런 양상의 폭탄거사가 터질지 몰라 불안감에 떨게 한 큰 사건입니다. ▲ 최수봉 1심 재판 기사, (매일신보, 1921.1.20.) 최수봉 열사는 순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경찰서를 빠져나가 내달리다가 길가 한 집에서 칼을 가져다가 ..

(얼레빗 4579호) 전, 예서에 능했으며, 독립운동 한 오세창 선생

굳건한 신념으로 가지고 많은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을 키워낸 이가 오세창 선생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선생은 아버지 오경석에게 이어받은 골동서화 감식안과 민족정신은 그의 집안뿐만 아니라 전형필 등을 민족문화유산 지킴이로 만들어냈지요. 또 그는 아버지와 자신이 수집한 풍부한 문헌과 고서화를 토대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펴냈는데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서화가에 관한 기록을 총정리한 사전입니다. ▲ 위창 오세창 선생(독립기념관 제공) “근래에 조선에는 전래의 진적서화(珍籍書畵)를 헐값으로 방매하며 조금도 아까워할 줄 모르니 딱한 일이로다. 이런 때 오세창씨 같은 고미술 애호가가 있음은 경하할 일이로다. 십수 년 아래로 고..

(얼레빗 4297호) 돈의문 철거하고 목재는 205원에 팔아

1915년 3월 4일 매일신보는 “난 경성 서대문이올시다.”라는 제목의 조선총독부 기관지답지 않은 기사를 실었습니다. 서대문이라고도 불렸던 돈의문의 철거를 의인화해서 ‘영원히 사라질 서대문’을 안타까워했지요. 기사는 “나는 1421년(세종 3년) 팔도장정 30만 명의 손으로 탄생한 성..

(얼레빗 4239호) 99년 전 오늘 밀양경찰서에 폭탄 던진 최수봉

“일본인 교사가 조선사를 가르치던 중에 단군은 자기네 대화족(大和族)의 시조로 추앙되는 스사노 오노미코토(素盞鳴尊, 소잔명존)의 아우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두 인물의 생존연대만 보더라도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니 최수봉이 학기말의 구두시험 때 ‘소잔명존이는 우리 단군의 중..

9월 17일 - <매일신보> 여기자 모집, 유부녀만 뽑아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은 1882년 발행된 관보 《한성순보》였으며, 최초의 민간신문은 《독립신문》이었는데 그때까지 기자들은 모두 남자들뿐이었습니다. 그 뒤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1910년 창간한 &lt;매일신보&gt;는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 식민지화를 선동하는 신문이었지요.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