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상 3

(얼레빗 제4776호) 황희 정승, 임금 앞에서 주저 없이 ‘아니오’

황희(黃喜, 1363~1452)는 단연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사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종 시대에 18년 동안 정승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황희는 태종(太宗)이 양녕대군을 폐위시키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세종)을 세자로 지명할 때 반대해 태종의 분노를 사서 서인으로 폐해지고 유배에 처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세종은 황희를 등용하려 할 때 많은 중신이 반대하자 황희의 행동이 "충성스럽지 않다고 볼 수 없다"라며 이를 일축했습니다. ▲ , 조선, 비단, 가로 57cm × 세로 88.5cm, , 국립중앙박물관 ​ 그런 황희는 왕권이 강했던 시절 임금의 일방적인 독주에 제동을 거는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세종이 중년 이후 새로운 제도를 많이 제정하자, 황희는 “조종(祖宗)의 예전 제도를 경솔히 변경할 수..

정치적 식견이 큰 조선의 명재상, 황희

정치적 식견이 큰 조선의 명재상, 황희 역사상에 국가 민족을 위하여 끼친 공적을 말하자면 설총 선생의 이두,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문익점 선생의 목화재배, 김장 선생의 회례편람, 국방에는 양만춘, 을지문덕, 이순신 장군이요, 정치 식견에는 황희, 정도전, 이이, 정약용, 박지원을 꼽을 수 있다. 『삼천리』 제7권 제3호(19.5.3.1.) 중 「선구자를 우러러 위대한 사상의 큰 어른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정치적 식견에 탁월한 것으로 알려진 황희(1363∼1452년)는 의정부(議政府)에 24년간 있으면서 일처리는 대범하여 사리에 맞고 기본적인 것만 들으면 낱낱의 조항을 저절로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태종 때부터 세종 때까지 임금의 보살핌과 신임이 매우 중하여, 대소사를 막론하..

천방지축 이항복을 큰 인물로 키운 어머니 최씨

천방지축 이항복을 큰 인물로 키운 어머니 최씨 해학으로 절망의 시대를, 청빈으로 재상의 길을 걸은 이항복(李恒福, 1556∼1618년). 그는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 정치가, 시인, 작가지요. 죽마고우인 이덕형(李德馨)과의 우정 이야기 ‘오성과 한음’으로, 또 명재상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항복이 훌륭한 인물로 자란 것은 어머니 최씨의 자녀 교육이 바탕이 되었다고 하지요. 이항복은 어렸을 때 무척 장난이 심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자, 그의 어머니는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사당(祠堂) 앞에 갔습니다. 그리고 식음을 전폐한 채 조상에게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를 빌었습니다. 이를 본 이항복은 어머니가 죽으려 하는 것으로 알고 깜짝 놀라며 용서를 빌었지요. 그러자 어머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