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식견이 큰 조선의 명재상, 황희
역사상에 국가 민족을 위하여 끼친 공적을 말하자면 설총 선생의 이두,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문익점 선생의 목화재배, 김장 선생의 회례편람, 국방에는 양만춘, 을지문덕, 이순신 장군이요, 정치 식견에는 황희, 정도전, 이이, 정약용, 박지원을 꼽을 수 있다.
『삼천리』 제7권 제3호(19.5.3.1.) 중 「선구자를 우러러 위대한 사상의 큰 어른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정치적 식견에 탁월한 것으로 알려진 황희(1363∼1452년)는 의정부(議政府)에 24년간 있으면서 일처리는 대범하여 사리에 맞고 기본적인 것만 들으면 낱낱의 조항을 저절로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태종 때부터 세종 때까지 임금의 보살핌과 신임이 매우 중하여, 대소사를 막론하고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황희를 불러 자문을 구했다고 하지요. 특히 태종이 그를 두고 “공신은 아니지만 나는 공신으로서 대우했고, 하루라도 접견하지 못하면 반드시 불러서 접견했으며, 하루라도 좌우를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황희는 춘추관을 비롯해 사헌부 감찰, 형조·예조·병조·이조의 정랑 등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그러나 재산을 축적하지 않은 청백리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파주 반구정(伴鷗亭)에서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냈지요. 사람들은 그를 두고 ‘소신과 관용의 리더십을 갖춘 명재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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