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 화가 3

(얼레빗 제4791호) 스트라디바리우스에 150년 앞선 탁영거문고

조선 중기의 사대부 화가 낙파 (駱坡) 이경윤( 李慶胤, 1545∼1611)의 에는 한 남자가 달을 보며 무심하게 거문고를 탑니다. 그런데 이 거문고는 줄이 없는 무현금(無絃琴)입니다. 줄이 없는 것이 거문고일 수가 있나요? 중국의 도연명이 음악을 모르면서도 무현금 하나를 마련해 두고 항상 어루만지며 ‘거문고의 흥취만 알면 되지 어찌 줄을 퉁겨 소리를 내야 하랴.’했다는 그 무현금이지요. ▲ 이경윤(李慶胤)의 , 비단에 수묵, 고려대학교박물관 선비들이 마음을 닦기 위해 연주했다는 거문고. 그래서 줄이 없어도 가능했던가 봅니다. 거문고를 즐겼던 안평 대군(安平大君)과 임영 대군(臨瀛大君)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세조는 배우지 않았어도 거문고를 잘 타서 아버지 세종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피리를 불자 학이 ..

김홍도를 최고의 화가로 키운 강세황

김홍도를 최고의 화가로 키운 강세황 저 사람은 누구인고? 수염과 눈썹이 새하얀데 머리에는 사모(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를 쓰고 몸에는 평복을 입었으니 마음은 산림에 가 있으되 이름은 조정의 벼슬아치가 되어 있구나. 가슴 속에는 수천 권의 책을 읽은 학문이 있고, 또 소매 속의 손을 꺼내어 붓을 잡고 휘두르면 중국의 오악을 뒤흔들만한 실력이 있건마는 사람들이 어찌 알리오. 나 혼자 재미있어 그려봤다!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로 문단과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년)이 자화상을 그리고 쓴 화제(畫題)입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60년을 벼슬 한 자리 하지 못했어도 스스로 대단한 학식과 포부가 있다고 생각하며 절치부심 자신을 닦았습니다. 그가 지은..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150년이나 앞선 탁영 거문고

조선 중기 사대부 화가 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의 를 보면 한 남자가 달을 보며 무심하게 거문고를 탑니다. 그런데 이 거문고는 줄이 없는 무현금(無絃琴)입니다. 중국의 도연명은 음악을 모르면서도 무현금 하나를 마련해 두고 항상 어루만지며 ‘거문고의 흥취만 알면 되지 어찌 줄을 퉁겨 소리를 내야 하랴’라고 했다지요. 옛 선비들은 마음을 닦기 위해서 거문고를 연주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줄이 없어도 괜찮았던가 봅니다. 아! 이 오동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서로 기다린 게 아니라면 누구를 위해 나왔으리오. 현재 전해지는 거문고 가운데 가장 외래되었다는 ‘탁영거문고’에 새겨진 시입니다. 탁영거문고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 27세였던 성종 21년(1498년)에 34세의 나이로 능지처참을 당했지만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