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김홍도를 최고의 화가로 키운 강세황

튼씩이 2021. 12. 13. 12:55

김홍도를 최고의 화가로 키운 강세황

 

 

저 사람은 누구인고? 수염과 눈썹이 새하얀데 머리에는 사모(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를 쓰고 몸에는 평복을 입었으니 마음은 산림에 가 있으되 이름은 조정의 벼슬아치가 되어 있구나. 가슴 속에는 수천 권의 책을 읽은 학문이 있고, 또 소매 속의 손을 꺼내어 붓을 잡고 휘두르면 중국의 오악을 뒤흔들만한 실력이 있건마는 사람들이 어찌 알리오. 나 혼자 재미있어 그려봤다!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로 문단과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자화상을 그리고 쓴 화제(畫題)입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60년을 벼슬 한 자리 하지 못했어도 스스로 대단한 학식과 포부가 있다고 생각하며 절치부심 자신을 닦았습니다. 그가 지은 도화도(桃花圖)라는 한시를 보면, 꽃이 피지 않아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붓으로 꽃을 그린다는 마음가짐으로 꿋꿋하게 살아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올해는 봄추위 심하여                今歲春寒甚

복사꽃 늦도록 피지 않았네         桃花晩未開

정원의 나무들 적막하지만          從敎庭樹寂

꽃이야 붓으로 그려 피우리라      花向筆頭栽

 

 

강세황은 시··화 삼절(三節)로 일컬어졌으며, 남달리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춘 사대부 화가였습니다. 그는 최초로 서양화법을 수용하여 우리 미술의 이정표가 되었고, 원근법적인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여 그동안의 관념적 산수화에서 벗어나 사실적인 산수화를 선보였지요. 그런데 강세황은 단지 그림을 잘 그린 것만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김홍도가 중인의 신분임에도 꺼리지 않고 그림을 가르쳐 조선 최고의 화원이 되게 한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옛날이든 오늘이든 대부분의 화가가 한두 가지만 잘 그리고, 여러 가지를 다 잘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김홍도는 인물, 산수, 신선, 부처, , 과일, 새와 동물, 벌레, 물고기, 게 등 못 그리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절묘한 작품이라 그를 뛰어넘을 화가가 없다.

 

 

표암 강세황이 제자였던 단원 김홍도에 대해 쓴 단원기(檀園記)입니다. 김홍도의 작품과 성품, 강세황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은 글이지요. ‘조선시대 화가하면 누구나 단원 김홍도를 먼저 떠올리는데, 김홍도는 원래 중인의 아들이어서 화원으로서 출세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세황은 같은 마을에 살던 어린 김홍도를 제자로 삼아 그림과 글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김홍도가 20세도 되기 전에 그를 도화서 화원으로 추천했지요. 그 덕분에 김홍도는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화제      그림 위에 쓰는 시문詩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