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임시정부 3

(얼레빗 제4814호) 이동녕 선생,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초대의장 돼

“오로지 뭉치면 살고 길이 열릴 것이요, 흩어지면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는 1919년,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면서 나라 밖 독립운동을 이끄신 이동녕 선생이 하신 말씀입니다. 선생은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에 선출되어 첫 회의를 주재하면서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이어 정부의 관제와 국무총리 그리고 각 구성원을 뽑았습니다. 또 헌법으로 을 제정ㆍ통과시켰으며,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나라 안팎에 선포함으로써 한국 역사상 첫 민주공화제 정부 수립을 이끌었지요. ▲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이동녕 선생 선생은 이후로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고난을 함께하며 나라 밖 ..

우당의 고종 망명 계획

《우당 이회영과 범정 장형의 발자취를 찾아서》를 보면 우당이 고종 망명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다 고종이 갑자기 붕어하는 바람에 실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원래 이규설의 신한혁명단에서 1915년 고종 망명을 추진하다가 실패하였는데, 우당은 1918년 11월 자신의 아들 이규학이 고종의 조카딸과 신부례를 올리는 것을 기회로 삼아 고종의 망명을 다시 시도합니다. 신부례란 신부가 시집에 와서 처음으로 올리는 예식이라고 하는데, 우당은 신부례를 올리는 것을 기회로 고종과 접촉하여 망명을 타진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아들 이규학이 이미 3년 전에 고종의 조카딸과 결혼하였지만, 고종 망명을 추진하면서 이때 신부례를 추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종의 시종 이교영을 통하여 고종에게 망명을 타진하였고, 고..

(얼레빗 4265호)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

85년 전 오늘(1월 31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李東輝) 선생이 심한 독감으로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선생은 젊었을 때 아버지의 주선으로 함남 단천군수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통인(通引)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통인 시절 군수가 자신의 생일에 어린 기생에게..